[동아광장]김용정/경제개혁의 덫

  • 입력 1998년 8월 10일 19시 41분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최근 흥미로운 기사를 실었다. 세계 29개국 성인 남녀 1만6천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 매긴 각국의 희망지수다. 설문은 세가지였지만 한마디로 요약하면 ‘앞으로 경제적 삶이 더 나아질 것으로 보는가’였다.

한국은 미국과 함께 공동 4위에 올랐다. 말레이시아 태국 중국 대만 등 아시아 국가들도 10위권 안에 들었다. 일본은 꼴찌였다.

‘아시아 국가들이 당장은 혹독한 경제적 시련을 겪고 있지만 자신들의 미래에 대해 긍정적이다. 이같은 태도가 아시아 경제 재도약의 또 다른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해석이었다.

물론 희망지수는 어디까지나 희망지수일 터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희망과 자신감의 회복이다. 그리고 그것은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 이전으로의 복귀가 아니라 IMF체제를 뛰어넘어 새로운 도전에 대한 응전의 의지를 새롭게 다지는 자신감이어야 한다. 막연한 희망지수를 실현 가능한 기대치로 바꿔놓아야 한다. 그것은 전적으로 정부의 몫이다.

이를 위해서는 몇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첫째, 총체적 개혁 후의 한국사회에 대한 장기 청사진의 제시다. 우선 개혁 목표가 뚜렷해야 한다. 장기 비전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경제주체들은 수동적으로 대응하거나 저항하게 된다.

둘째, 그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종합적이고 일관된 전략과 이를 뒷받침할 실효성 있는 정책프로그램의 개발이다.

셋째, 강력한 리더십의 확립과 광범위한 개혁주도세력의 확보다. 개혁에의국민적의지와공감대를 하나로 묶어낼 수 있어야만 개혁의 성공 가능성이 커진다.

김대중(金大中)정부 출범 6개월째다. 국정운영의 기본철학과 이념으로서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은 총체적 개혁의 목표와 기본방향을 비교적 명확히 제시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그같은 국정이념이 구체적인 정책으로 나타날 때 보다 체계화되고 정교한 프로그램으로 가다듬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 실증을 기업 금융 구조조정과정에서의 신자유주의적 전략과 실업대책 수립에 있어서의 사회통합적 접근이라는 정책의 상충 등에서도 단적으로 엿볼 수 있다.

개혁의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 듯하지만 환경과 경제주체간 관계의 복잡성, 기득계층의 저항과 대중의 무관심, 고통분담을 둘러싼 이해관계의 대립, 폭넓게 퍼져 있는 도덕적 해이, 전통적 사회 문화가치의 왜곡과 혼돈 등도 개혁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더욱 큰 의구심은 IMF정책 패키지와 지금의 개혁프로그램이 과연 최선의 선택이냐 하는 점이다. 경제위기를 맞은 국가들에 강요하는 IMF정책이 국제금융자본의 지배를 용인하는 체제구축을 겨냥하고 있으며 그 폐해가 실증적으로 입증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자본과 다국적기업의 생리를 무시한 채 무차별적 외자조달에 매달리고 실물경제의 기반붕괴와 경제주권의 상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외면할 때 우리의 또 다른 비극이 잉태되는 것 아니냐 하는 두려움이 앞선다.

김용정<논설위원>yjeong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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