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부른다/경북]최백호와 포항 영일만

  • 입력 1998년 7월 15일 20시 02분


영일군 구룡포
영일군 구룡포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내 친구 홍수진.

포항 영일만에 서면 그 친구 얼굴이 눈에 밟힌다. ‘내마음 갈 곳을 잃어’란 노래로 ‘가수 최백호’가 세상에 알려질 즈음인 77년. 영일만에서 음악카페를 하며 혼자 살던 그 친구를 찾았다. 라디오 음악PD이자 시인이었던 그 친구와 검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소줏잔을 기울이다 문득 ‘영일만’에 관한 노래를 하나 지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친구와 함께 밤새 머리를 끙끙대며 가사를 만들고 서울에 와 곡을 붙인게 바로 ‘영일만친구’다.

‘바닷가에서 오두막집을 짓고 사는 어릴적 내친구/푸른 파도 마시며 넓은 바다의 아침을 맞는다/누가 뭐래도 나의 친구는 바다가 고향이란다/갈매기 나래위에 시를 접어 띄우는/젊은날 뛰는 가슴안고 수평선까지 달려나가는/돛을 높이 올리자/거친 바다를 달리자/영일만 친구야’

그 시절 젊은이라면 누구나 가졌을 억눌린 세상에 대한 답답함, 갑갑함… 그것들을 풀어낼 ‘고래사냥’같은 노래를 만들고 싶었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았다.

고등학교때 공부는 뒷전이고 미술에 푹 빠졌던 나는 그시절 부산대학교앞에서 DJ를 하던 그를 우연히 만나 친해지게 됐다. 그는 나보다 두살위로 형뻘이었지만 우리 둘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외롭게 자랐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어머니때문에 시골사택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나. 학교가 파해 아이들이 다 돌아가면 텅빈 운동장에 나 혼자 뿐이었다. 어둠이 밀려올 즈음이면 섬뜻섬뜻 느꼈던 죽음에의 공포.

아버지없이 위로 누나만 둘이었던 나는 일찍부터 세상이 외롭고 힘들었다. 그리고 열아홉살에 맞은 어머니의 죽음.

그즈음 만난 수진형은 내가 유일하게 세상과 호흡한 통로였다. 20여년 우정이 그의 죽음으로 막을 내리기전까진.

자기가 암으로 죽어간다는 사실조차 모르던 그는 어느날 ‘나 내일 죽는다’한마디하고 이튿날 눈을 감았다.

절정과 좌절의 반복인 가수생활, 소중했던 친구의 죽음은 나를 힘들게했다.

늘 ‘이건 아니다’ ‘뭔가 다른게 있다’고 생각하며 20여년 살았지만 결국 ‘더이상 더이하도 아닌게 인생’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음악도 그렇다. 새로운 팬을 만들겠다는 욕심보다 내 노래를 들었던 사람들,나와 같이 늙어가는 사람들을 위한 노래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해서 나온게 ‘낭만에 대하여’다.

‘낭만에 대하여’는 곡이 나온지 1년반뒤에야 드라마 ‘목욕탕집 남자들’에 삽입돼 인기를 더하면서 30만장이 팔리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삶이란 어쩌면 우연의 연속 아닌가. 늘 자식같은 곡을 만들어 내놓지만 그다음부터는 내 몫이 아니다. 나는 그저 내생명과도 같은 음악을 위해 죽는날까지 노래부르는 가수일뿐.

지금도 두달에 한번꼴은 영일만에 간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먼저 해를 맞는 그 곳에 서면 가슴이 탁 트인다. 유난히 아름다운 짙푸른 코발트색의 바다 빛깔을 보면서 아! 나는 격정속에서도 언제나 평온한 바다가 돼 살고싶다.

〈정리〓허문명기자〉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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