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경기]우문국화백 『문화불모지 안타까워』

입력 1998-07-08 09:25수정 2009-09-25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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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이 어쩌다 이렇게 문화 불모지가 됐는지 모르겠어요.”

인천 문화예술계의 거목(巨木) 고여(古如) 우문국(禹文國·82·인천 연수구 동춘2동 현대아파트)화백은 “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화예술을 육성하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우화백은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나 해주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37년 중국상하이(上海)로 건너가 9년동안 살면서 그림에 심취했다. 그는 해방과 함께 예술 인생의 반려자인 검여(劍如) 류희강(柳熙綱)씨를 따라 귀국, 인천에 머물면서 인천 월미도 앞바다 풍경을 그리기 시작했다.

우화백은 “당시 붉은 돛을 단 범선(帆船)들이 월미도의 검푸른 녹음을 배경으로 입출항하는 아름다운 모습에 반해 인천에 정착하기로 결심했다”고 회고했다.

우화백은 49년 인천지역 문화예술인 단체인 ‘인천 예술인 협회’를 창설, 예술인의 단합에 앞장섰다.

또 미국 공보원과 교류해 인천에서 처음으로 ‘미술공모전’을 개최했다.

6·25가 터지자 예술인으로 구성된 ‘구국대’를 조직해 인민군과 싸우기도 했다.

그는 초대 인천문화원장으로 취임한 55년부터 본격적으로 그림에 몰두했다.

우화백은 “60년대 부터 중구 신포동 시장골목에 있는 ‘백항아리집’을 즐겨 찾아 인천지역 예술인들과 밤새 막걸리를 마시면서 예술을 논했고 이때가 가장 행복했다”고 회상했다.

68년에 완성한 작품 ‘비천도’는 조개껍질을 갈아 그린 ‘패분화’로 유명하다.

그의 수묵화를 보면 강직하고 부드러운 성격이 화폭에 그대로 묻어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우화백의 그림을 보면 마치 그를 직접 대하는 것 같다고 입을 모은다.

우화백의 예술에 대한 정열은 지금도 왕성하다.

그는 “예술에 대한 나의 정열로 내 생이 끝날 때까지 계속 그림을 그리겠다”고 말했다.

그의 제자 5명은 지난달 인천 신세계백화점 갤러리에서 ‘우문국 50년 예술세계’란 이름으로 스승의 높은 뜻을 기리는 전시회를 열었다.

〈인천〓박정규기자〉rochest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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