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용정/IMF처방과 한국경제

  • 입력 1998년 6월 10일 19시 44분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 6개월의 한국경제 성적표는 실로 참담하다. 실업자 1백50만명, 경제성장률 마이너스 3.8%, 산업생산증가율 마이너스 10.8%, 물가상승률 8.2%….

어디 그뿐인가. 경기침체가 장기화하자 산업기반이 뿌리째 흔들리고 우리 사회를 지탱해온 중산층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자산 디플레현상이 심화하면서 실물자산 가치가 폭락하고 주식시장도 붕괴직전이다. 미국 제너럴 일렉트릭사의 주식 5분의 1이면 국내 상장기업 전부를 살 수 있다는 달갑잖은 셈법까지 들먹여지고 있다.

그러나 정작 고통은 이제부터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한국의 위기는 아직 최악의 순간을 맞지 않았으며 앞으로 더 혹독한 시련을 견뎌내지 않으면 안된다고 국제결제은행(BIS)은 경고한다.

실제로 기업과 금융구조조정이 본격화하면 수많은 기업의 연쇄도산과 부실금융기관의 퇴출이 이어질 것이다. 실업자수는 매달 사상 최고치를 경신할 것이며 이는 가계파탄과 사회불안을 부를 것이다. 용케 살아남는 기업들도 지금과 같은 살인적인 고금리를 언제까지 견뎌낼지 의문이다.

그렇다고 기업과 금융개혁을 뒤로 미루거나 늦출 수도 없다. 한국의 경제위기는 바로 시스템의 위기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강도높은 구조조정을 통해 고비용 저효율 구조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치고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열린 시스템을 새로 구축하지 않고는 경제회생의 돌파구를 찾을 수 없다.

그런 점에서 금융재벌개혁, 산업구조조정, 자본 무역시장의 완전개방 등을 요구한 IMF 정책권고는 신속 과감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문제는 IMF의 거시안정 프로그램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우려되는 것이 통화 재정긴축과 고금리가 한국경제 회생에 미치는 부작용이다. 지금 기업의 숨통을 죄고 있는 고금리현상은 외환안정 우선정책의 결과다. 그러나 고금리체제의 장기화는 한계기업은 물론 우량기업까지 마구 쓰러뜨려 산업기반을 붕괴시키고 있다. 그러잖아도 취약한 금융시스템은 아예 마비상태다. 그 결과 구조조정도 더 어려워지고 있다.

IMF는 한국과 동아시아 국가들에 요구한 개혁처방들이 과연 옳은 것인지 냉철하게 따져봐야 한다. 동아시아 위기의 근본원인은 잘못된 경제구조와 과다한 단기외채도입, 거품경제의 붕괴 때문이었지만 90년대 이 지역에 자본을 집중시키고 거품경제를 수출한 선진국의 책임도 크다.

동아시아 경제위기는 현대자본주의 세계화과정에서의 결함과 이에 대응하는 각국의 정책실패가 결합해 일어났다. 그러나 보다 직접적인 원인은 국제 핫머니의 환투기에서 찾아야 한다. 이런 움직임에는 국제금융기관의 투자자본도 가세했다.

하루 외환거래만도 1조달러가 넘는 환결제 투기압력을 효과적으로 방어해낸다는 것은 어느 나라 중앙은행도 불가능한 일이다.작년 7월 태국 바트화의 투매사태로 촉발된 통화금융위기는 이제 한국을 거쳐 일본까지 뒤흔들고 있다. 언제 그것이 세계적 위기로 번져날지 모를 상황이다.

미셸 캉드쉬 IMF총재와 앨런 그린스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장은 다음과 같은 충고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월스트리트가 붕괴하고 유러화도 혼란에 직면해야 IMF의 설립취지가 경제성장을 위한 안정적 국제금융환경 조성이라는 것을 깨닫겠다는 것인가. 무려 3조달러의 외채에다 증시마저 과열상태인 미국의 연착륙을 위해서도 동아시아 경제안정은 필수적이다.”

김용정<논설위원>yje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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