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용정/5·18정신의 계승

입력 1998-05-25 20:02수정 2009-09-25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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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이다. 생명의 푸르름이 약동하는 그런 계절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5월 이맘 때만 되면 광주의 한(恨)과 원(怨)을 온몸으로 앓는다.

80년5월 광주, 그리고 18주년. 올해도 어김없이 그 5월을 맞고 또 보낸다. 내일이면 지난 3일부터 시작된 광주민주화운동 18돌 기념주간이 막을 내리고 5·18광주시민항쟁 당시 10일간의 처절했던 역사적 시간들도 또한번 조용히 나래를 접는다.

올해 5·18기념주간의 의미는 각별하다. 역사적 여야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이후 처음 맞는 기념주간이어서가 아니다. 정부 주관의 기념식이 엄숙하게 치러지고 전국 각지로부터 망월동 5·18묘역을 찾는 추모객들의 발길이 잇따라서만도 아니다.

18년이란 단절과 왜곡의 벽을 넘어 광주민주화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새롭게 조명할 수 있게 됐다는 감회 때문이다. 아시아인권위원회가 아시아인권선언문과 광주선언문을 채택한 것도, 5·18기념재단과 한국사회학회가 세계화 시대의 인권과 사회운동으로서 광주민주화운동을 재조명해 본 것도 뜻깊은 일이다.

누군가 역사는 해석하는자의 몫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5·18은 국가의 원초적 폭력을 거부하고 시민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신(新)인권항쟁으로 그 역사적 의미가 정리되고 있다. 그리고 진실과 정의, 민주와 평화라는 5·18정신의 세계화가 외쳐지고 있다.

5·18광주민주화투쟁은 여러 각도에서 접근과 해석이 가능하다. 새로운 인권개념을 탄생시킨 역사적 사건이라는 평가와 함께 민주화를 갈구하는 시민들의 국민주권 실현과 자기정체성 찾기의 승인(承認)투쟁이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렇다. 5·18은 빼앗긴 주권을 되찾고자 국민을 대신해 광주시민들이 폭력정권에 과감히 맞서 싸운 의로운 투쟁이자 무한폭력에 대한 자위권적 정당방위였다. 그리고 그해 5월, 공권력이 철수한 22일부터 27일까지 6일간의 해방기간은 역사상 처음 시도했던 공동체 자치의 귀중한 실험무대였다. 그 기간 자치공동체는 약탈과 방화, 혼란과 무질서 대신 보살핌의 윤리와 자율적 질서유지로 공동체를 이끌면서 진정한 민주주의를 꽃피워냈다.

80년 이후의 한국의 역사, 민주발전은 광주항쟁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후의 정치 시민운동은 인권 민주 화합의 5·18정신에 기대어 모색되고 추진되었고 헌정사상 처음의 수평적 정권교체도 그 연장선상에 자리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5·18이 법정기념일로 지정되고 정치적으로도 헌정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주권자의 저항이라는 숱한 헌사(獻辭)가 쏟아졌지만 5·18을 광주만의 문제로 붙잡아두려는 지역주의 틀에 갇혀 아직까지도 제대로 된 정신적 이념적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광주항쟁의 정확한 진상규명만 해도 많은 부분이 숙제로 남아 있다. 광주진압작전의 공로로 무공훈장을 받은 그 때, 그 반란 책임자들은 여전히 국가안보를 위한 영웅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광주민주화운동은 미완(未完)이며 진행중이다.

광주민주화운동의 완성이란 다른 것이 아니다. 한국이라는 한 민족국가의 특정지역에서 일어난 특수한 사건이라는 왜곡된 시각에서 벗어나 5·18의 참다운 정신과 이념을 전지구의, 인류사회가 지향해야 할 보편적 가치로 승화시키는 일이다. 그것이 바로 5·18정신의 세계화이기도 하다. 그것은 전적으로 그때 살아남아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몫이다.

김용정<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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