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재홍/필리핀의 정권교체

  • 입력 1998년 5월 12일 19시 58분


▼아시아에서는 드물게 필리핀에서 다시 한번 여야간 정권교체가 이뤄지는 모양이다. 대통령선거 투표 직후 출구조사에서 야당후보 에스트라다의 당선이 확실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7천1백여개의 섬으로 구성된 나라여서 개표완료까지는 2주 정도 걸린다. 아시아의 민주주의를 염려하는 서구인들에게 얘깃거리가 생겼지만 기대와 우려가 반반이라고 한다. 에스트라다의 음주벽과 여성편력 때문이다.

▼역대 필리핀대통령 8명 중 가장 훌륭한 인물로는 대체로 막사이사이를 꼽는다. 필리핀의 지도자들이 대개 스페인혈통인데 비해 그는 다수 국민과 같은 말레이계였다. 50년대초 국방장관이 된 그는 성공적인 게릴라소탕전을 폈다. 귀순자 우대와 인민 존중, 전투에서의 기동성과 유연성을 강조한 덕이다. 정부가 부패하자 사임하고 야당 후보로 나서 53년 필리핀에서 처음 정권교체를 이룬 것도 그였다.

▼두번째 정권교체는 마르코스가 해냈다. 65년 현직 대통령 마카파갈과 겨뤄 이긴 그는 69년 최초의 재선도 기록했다. 교만해진 마르코스는 72년부터 81년까지 계엄령, 그후엔 대통령령 통치를 계속했다. 이때 부인 이멜다도 마닐라 시장에 주택환경장관을 겸한 실력자였다. 미국 망명에서 귀국하던 아키노가 공항에서 피살된 데 격분한 국민항거로 그의 철권통치는 막을 내렸다.

▼후진국 민주정치의 모델로 미국학자들이 내세운 나라가 60년대까지의 필리핀이다. 마르코스의 계엄통치와 박정희(朴正熙)의 유신체제가 시작된 72년은 아시아 민주주의의 종식의 해로 불린다. 마르코스 이후의 코라손 아키노와 한국의 군정기 이후 김영삼(金泳三)정권은 ‘민주화와 경제후퇴’로 유사하다. 코라손 다음의 라모스처럼 김대중(金大中)정부가 경제부흥을 이룰 것인지에 비교정치학자들의 관심이 쏠려 있다. 에스트라다가 경제를 어떻게 꾸려갈지도 주목거리다.

김재홍〈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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