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문화 바꾸자 ①]거리의 폭력집회에 멍드는 경제

  • 입력 1998년 5월 4일 19시 30분


《언제까지 폭력시위여야 하나. 외국인투자가 아니면 헤쳐나갈 길이 없다고 하는 경제국난 상황이다. 불안한 서울 거리를 지켜보면서 선뜻 투자할 기분이 내킬리 없다. 21세기를 눈앞에 둔 이 시점에도 과거 군사독재시대의 유물인 폭력시위의 사슬은 왜 끊기지 않는 것일까. 시위문화 이대로는 안된다.》

근로자의 날인 1일 서울 도심 한복판인 종묘공원 앞에서 허공을 가로지르며 난무하던 돌과 시위대의 손에 쥐어진 쇠파이프. 외신은 다투어 이 극적인 ‘서울거리의 전투’를 카메라로 담아 세계로 쏘았다.

서울 데모는 시청각 효과가 어우러진, 외신기자의 좋은 취재거리다. 세계적인 수준의 고층빌딩숲, 그리고 붉은 마스크를 두르고 쇠파이프같은 ‘무기’를 휘두르는 청년들의 절규, 방석복에 방패를 든 로마병정같은 전경들의 공격. 그 극적인 조화가 세계 시청자들의 안방 눈요기거리가 되는 것이다.

재외교민들은 “유고내전의 일상적인 총격전, 팔레스타인 난민촌의 총성, 그리고 서울거리의 데모가 비슷한 분위기로 느껴진다. 특히 경찰차에서 최루탄을 연발로 쏘아댈 때는 그 음향효과조차 전쟁터의 그것을 연상케 하는 세계인의 구경거리가 되는 것 같아 부끄럽다”고 말한다.

그 결과 한국은 불안한 나라, 두려운 국민의 나라로 치부된다. 당연히 세계 시장에 물건을 팔고 외자나 관광객을 유치하는데도 지장을 준다. 그러나 그것은 지난 수십년 동안 민주화라는 과제를 안고 정통성문제로 시달리는 정부와 더불어 살아온 우리 사회의 어쩔 수 없는 단면이었다. 그런데 이른바 ‘문민정부’가 지나가고 ‘국민의 정부’를 맞았다는 오늘날까지 그 폭력적 시위문화가 되풀이되고 있다.

6·25동란 이후 최대의 국가적 위기인 국제통화기금(IMF)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의 최대 과제는 ‘경제회생’이다.

과격 폭력시위로 인해 우리 사회가 입고 있는 유무(有無)형의 경제적 손실은 이같은 시대의 과제를 외면하는 것으로 자칫 우리 사회 전체를 끝없는 파탄으로 빠뜨리는 촉발제가 되기에 충분하다.

이를테면 시위진압을 위해 매년 경찰이 지출하는 예산도 결코 적지 않은 금액. 경찰청에 따르면 한총련의 연세대 농성과 노동법 개정 파동으로 93년 문민정부 출범 이후 과격 폭력시위가 가장 절정에 이르렀던 96년 경찰이 지출한 시위진압비용은 무려 1백2억여원.

이 중 물대포 등 시위진압장비를 구입하는 데만도 웬만한 중소기업의 한해 매출액에 버금가는 91억여원의 예산을 사용했다. 물대포는 오스트리아 수입제품이며 96년 달러환율로 한대에 6억5천만원짜리다.

80년대 중반 국내 최루탄 생산업체가 한때 수백억원의 매출액을 올리는 기현상이 벌어질 수 있었던 것도 과격 폭력시위가 만들어낸 ‘슬픈 자화상’이다. 문제의 최루탄업체 사장 한모씨는 87년 개인납세액이 32억5천만원으로 국내 대기업 총수를 제치고 단연 수위였다.

95년 32억여원 등 80년 이후 매년 수십억여원에 이르던 경찰의 시위진압예산은 한총련 출범집회 외에는 과격 시위가 거의 없었던 지난해 3억여원으로 크게 줄어들었으며 올해는 4월 현재까지 7천만원이 지출된 상태다.

그러나 이같은 지출액은 시위진압부대를 유지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은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이를 합할 경우 매년 1백억원 가까운 예산이 시위진압을 위해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여기에 과격 폭력시위 과정에서 발생하는 시위대와 경찰 부상자의 치료비까지 더할 경우 시위로 인해 낭비되는 사회적 비용은 더욱 늘어난다.

경찰청에 따르면 80년 이후 상대적으로 부상자가 적었던 문민정부 5년동안 시위진압과정에서 부상한 경찰은 전의경을 포함해 모두 7천7백67명. 이는 한해 평균 1천5백명이 넘는 수치로 이 중 중상자만 해도 전체 부상자의 10%에 이르고 있다.

특히 경찰의 집계에 드러나지 않는 시위대의 부상자까지 합할 경우 매년 3천명 정도가 과격 폭력시위의 희생자가 되고 있는 것으로 경찰은 분석하고 있다.

한편 지난해부터 감소추세를 보이고 있는 경찰의 시위진압지출액은 1일 근로자의 날 시위와 같은 과격 폭력시위가 재연될 경우 올해 다시 가파른 증가세로 돌아설 수 밖에 없다는 것이 경찰의 전망이다.

근로자의 날 시위와 같은 과격 폭력시위 행태를 버리지 않는 한 경제회생을 위해 사용돼야 할 예산이 길바닥에 버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더욱 우려되는 것은 과격 폭력시위가 이처럼 눈앞에 보이는 경제적 손실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근로자의 날 폭력시위를 바라본 외국 투자가들의 입에서 벌써부터 국가신인도 하락 등 우리 경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이현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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