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재벌개혁 후퇴 안될 말

  • 입력 1998년 1월 31일 20시 16분


기업간 대규모 사업교환, 이른바 빅 딜을 둘러싸고 차기정부 진용에서 미묘한 혼선이 일고 있다. 박태준(박태준)자민련총재는 30일 대기업간 사업교환은 대기업개혁의 본질이 아니라 수단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취임전까지 최소한 한두개 정도의 가시적 빅딜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김대중(金大中)차기대통령측의 당초 주문과 어긋나는 분명한 반론이다. 박총재는 재벌에 구조조정 결과를 성급하게 요구하면 부작용이 나올 수 있으며 재벌개혁은 스스로 하는 것이지 강압적으로 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같은 관점은 국민회의측의 강력한 빅 딜 촉구에 이의를 제기해 온 재벌그룹의 이른바 시장경제원리 위배론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재계 로비로 차기정부의 재벌정책이 또 변질되지나 않을까 우려되는 대목이다. 빅 딜을 통한 대기업간 사업조정을 재벌개혁의 본질적 과제 가운데 하나로 보는 정책시각은 국가뉴뇻의 효율성에 근거를 두고 있다. 우리 재벌기업들은 그동안 방만한 차입경영을 통해 거의 모든 주요업종에 경쟁적으로 투자해 왔다. 그 결과 자동차 반도체 유화 등 주요업종에 과잉 중복투자가 이루어졌다. 대기업의 업종전문화가 뒷전으로 밀리고 그룹 전체의 부실과 국가경제 단위의 투자낭비가 초래되었다. 빅 딜은 이같이 중복된 사업분야를 기업간 교환을 통해 정돈함으로써 사업단위의 효율성과 경쟁력을 높이고 낭비적인 경쟁체제를 바로잡는 데 의미가 있다. 빅 딜이 ‘구조조정과정에서 대기업이 자율적으로 고려할 수 있는 하나의 수단’이기보다 재벌개혁과 산업구조조정의 핵심과제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국가경제의 대외신인도회복과 노사정 대타협을 위해 강도 높은 재벌개혁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빅 딜을 후순위로 미루려는 움직임이 있다면 시대요구에 역행하는 것이라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더욱이 비상경제 대책위원회는 기업이 사업을 교환할 때 양도차익에 대해 법인세를 감면하는 등 대기업 요구사항을 수용하는 내용의 입법안을 손질하고 있는 중이다. 국민대타협을 위한 노사정 협상에서도 재벌개혁은 뜨거운 현안이 되어 있다. 이같은 일련의 개혁노선에 혼선이 있어서는 차기정부의 개혁의지 전체가 상처를 입는다. 빅 딜이 ‘노사정 고통분담을 위해 기업도 성의를 표해달라는 수사(修辭)였을 뿐’이라고 설명했다는 외채협상팀의 뉴욕발언 보도가 사실이라면 차기정부가 속임수를 쓴다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 민노총의 노사정위 불참결정을 주목해야 한다. 속도조정은 몰라도 대기업의 빅딜은 경영투명성, 총수의 경영책임 강화와 함께 국가경제의 저효율구조 개선차원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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