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찬식/방송프로의 「구조조정」

  • 입력 1998년 1월 22일 19시 46분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한다”는 그레셤의 법칙은 경제뿐만 아니라 문화에도 같이 적용된다. 문화소비자들은 본능적으로 양질의 문화보다 쾌락적 퇴폐적문화에 더 끌리게 되므로 ‘나쁜 문화’가 ‘좋은 문화’를 밀어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오늘날 막강한 힘으로 대중문화를 이끄는 TV의 고민도 여기서 비롯한다. 건전하고 유익한 프로는 시청자에게 외면당하기 십상이고 오락프로는 대충 만들어도 반응이 뜨겁다. ▼TV의 폐해가 여론의 도마에 오를 때마다 TV제작자들이 외치는 과제가 ‘시청자로부터의 자유’다. 시청자가 원하는 대로 프로를 제작하다 보니까 TV가 이 지경이 되었다는 항변이다. 책임을 시청자에게 떠넘기려는 자기변명에 불과하지만 그렇다 해도 TV제작자와 시청자가 상호보완적 관계라는 사실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제대로 된 방송풍토를 이뤄나가자면 시청자쪽에서도 해야 할 몫이 있다. ▼국가위기 이후 TV사들도 대대적인 ‘방송프로 구조조정’에 나섰다. KBS의 경우 오락프로 가운데 드라마를 5편 줄이고 10대 취향 쇼를 폐지하며 심야방송을 1시간 줄인다는 혁신적 내용이다. 그 빈자리에는 주로 가족 교양 프로를 편성한다는 것이다.‘시청률 지상주의’로 대변되어온 방송사와 시청자 사이의 ‘밀약관계’를 방송사쪽에서 먼저 깨고 나온 조치로 환영할 만하다. ▼어느 때보다 공공성이 요구되는 TV가 더 이상 인기에만 매달릴 수는 없다. 방송사들이 일시적 충격요법으로 여론의 화살을 피하려 한다면 시청자의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방송사들은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도 좋지만 한걸음 나아가 TV개혁에 적극 나서야 한다. KBS 등 방송사의 약속이 어김없이 실천되도록 시청자도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홍찬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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