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유인택/남북정상 만남 그 자체에 상징적 의미

  • 입력 1998년 1월 14일 08시 00분


남북관계 개선문제를 거론할 때면 으레 남북정상회담 문제가 떠오른다. 김대중 차기대통령이 당선기자회견을 통해 “필요하다면 정상회담도 고려할 수 있다”고 언급한데다 새 정부가 출범하면 대북정책에 어떤 전기가 마련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심리까지 작용해 관심사가 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정치적 이해득실을 계산한 뒤 거부하는 태도를 갖는 한 정상회담은 성사될 수 없다. 실제로 그럴 가능성이 큰데 이렇게 되면 기대나 논의 자체가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다. 남북정상회담의 의미는 무엇보다도 상징성에 있다. 정상간의 만남은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의미를 갖는다. 그것이 몰고올 영향의 진폭은 예측하기 어렵다. 남북정상회담은 흔히 말하는 국가간의 정상외교 범주와는 차원을 달리한다. 현안을 놓고 담판하는 차원을 넘어 보다 복잡하고 다양한 성격을 함축한다. 결코 목전의 손익계산으로 얻고 잃는 것을 평가할 수 없는 회담이다. 미소 냉전대결구조 완화, 미중관계 정상화, 이집트와 이스라엘간 분쟁해결, 아르헨티나와 브라질간 핵문제 해결, 남북 예멘 통합 등의 사례는 정상회담이 대결국면을 타개하고 평화문제를 해결하는 빛나는 도구였음을 시사해준다. 국가 정상이 만나서 서로 이해하고 신뢰할 수 있는 믿음이 세워지면 순차적으로 좋은 관계가 펼쳐질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남북정상회담 문제를 놓고 처음부터 가시적 성과에 집착하는 것은 결코 현명한 일이 아니다. 회담장소 의제 사전준비 및 분위기 등의 문제로 피곤한 신경전을 벌이는 것은 부질없는 일일지 모른다. 이기고 지는 차원을 너무 경계하고 계산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북한측의 유고로 유보된 94년 7월의 남북정상회담 개최 합의는 지금도 유효하다고 본다. 북한측은 침묵만으로 본질을 호도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역사와 후대들은 오늘을 사는 세대들이 과연 평화와 통일문제를 진전시킬 수 있는 상황적응 능력과 현실처리 역량을 가졌는지, 큰 나라를 경영할 만한 야심과 포부를 가지고 민족자존과 자주적 이익을 옹호하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다했는지 준엄하게 심판할 것이다. 유인택(통일교육원 교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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