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재벌과 책임경영

  • 입력 1998년 1월 12일 20시 22분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재벌총수의 전횡억제와 경영책임 강화를 긴급과제로 선정했다는 보도다. 바람직한 방향설정이다. 투명경영과 기업지배구조의 선진화는 재벌개혁의 핵심과제다. 검토가 아닌 실행차원에서 법제화를 앞당기기 바란다. 현 경제위기의 가장 큰 책임은 재벌기업에 있다. 재벌기업의 방만한 차입경영이 국가경제의 부실화와 외환위기를 불러들였고 그 고통을 국민과 근로자가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 재벌총수들이 책임을 통감하고 국민앞에 사죄해야 마땅하다는 일부 정서는 거기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재벌들은 아직 이렇다할 개혁방안조차 내놓지 않고 있다. 그리고 한편에서는 기업의 도산과 대량실업이 속출하고 정리해고제 도입문제로 노사정 갈등이 첨예화하고 있다. 현사태에 대한 책임문제를 떠나 갈등의 실마리를 풀어가는 순서로서 재벌기업의 지배구조개혁과 책임경영방안을 법제화하는 문제가 제기된 것은 당연하다.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고 책임경영제를 확립하려면 기업의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는 것이 궁극목표가 되어야 한다. 기업을 소유하되 전문인에게 경영을 맡기는 기업경영방식은 선진 자본사회의 상식이다. 그것은 변칙 기업상속이나 족벌경영의 폐해를 차단하기 위한 장치로서만이 아니라 경영효율을 극대화하는 경영합리화 차원에서 지향해야 할 목표다. 그러나 우리 재벌기업은 총수 한사람의 전횡적 지휘아래 경영되어 왔다. 재벌총수의 판단과 결정에 이의를 제기할 제도적 장치도 없었고 경영의 잘잘못을 추후에 가릴 제도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다. 늦게나마 법원이 한보철강의 부실책임을 묻기 위한 사정재판을 추진하고 있으나 그것은 사후약방문이다. 거대 기업의 경영부실을 사전에 방지하는 제도적 장치를 재벌개혁과 재벌기업의 구조조정차원에서 이 기회에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 대통령직인수위는 재벌총수의 전횡억제와 책임강화 방안으로 경영자의 충실의무를 규정한 상법의 엄격한 적용, 사외이사 및 외부감사제 도입, 집단소송제 등 소액주주의 견제권 강화 등을 우선 추진할 계획이라고 한다. 국제통화기금(IMF)과 합의한 결합재무제표 의무화나 상호지급보증금지 등도 미적미적 미루어선 안된다. 차제에 기업의 투명경영과 책임경영체제를 확고하게 다지지 않고는 국제신인도의 회복은 물론 국가경제의 경쟁력확보를 기약할 수 없다. 거대기업의 부실이 국가경제에 미치는 폐해는 한보 기아 등 대기업부도사태를 통해 뼈저리게 겪었다. 그 책임은 물론 정경유착관행 등 정치권과 정책관료들에게도 있다. 그러나 재벌의 반성과 개혁이 반드시 함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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