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산책]이문열/영화를 닮아가는 세상

  • 입력 1997년 3월 9일 09시 20분


며칠전 부부싸움이 부른 끔찍한 참사가 보도된 적이 있다. 아내와 다투던 40대의 가장이 가스통에 불을 붙여 폭발시키는 바람에 그 부부와 이웃사람 하나가 죽고 여남은명이 부상한 사건이다. 그들이 살던 연립주택도 끝내는 무너졌다고 한다. 잇따른 보도는 요즘 들어 사생결단의 참사로 끝을 보는 부부싸움이 늘었음을 통계로 보여주었다. 칼로 물베기라는 속담은 이제 흘러간 옛말이 되었다는 개탄도 곁들여졌다. ▼ 참사-폭력 어딘가 비슷 ▼ 그 사건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각양각색이었다. 남자들은 으레 『여자가 무슨 부부싸움을 그렇게 몰아가?』라는 식으로 아내쪽을 나무랐고 여자들은 『남자가 오죽했으면 그렇게까지 나왔을까』하며 남편쪽의 원인제공에 책임을 묻는다. 사회학자들은 어김없이 생명경시 풍조와 인간성의 황폐를 들먹인다. 그런데 그 참사의 마지막 몇분을 가만히 머릿속에서 구성해보면 그 장면이 왠지 우리에게 익숙한 느낌을 준다. 남편이 발작적으로 가스통 마개를 열고 라이터를 꺼내든다. 그리고 비장한 영웅처럼 아내에게 묻는다. 『이러느니 차라리 모든걸 끝내는게 어때』 아내도 감정의 과장에서 헤어나지 못하며 비극의 여주인공처럼 처절하게 받는다. 『그래, 좋아. 깨끗이 끝내버리자고!』 남편, 결연히 라이터를 켠다…. 똑같은 내용은 아니지만 우리는 그와 유사한 분위기를 풍기는 장면을 영화속에서 많이 보아왔다. 다른 것은 가스통이 폭발한 그 순간 주인공들이 짓는 표정과 외침이다. 영화속에서는 그 비극성을 한층 증폭시키는 허탈한 미소 혹은 쓴웃음으로 처리되기 십상이지만 현실속의 주인공들은 그제서야 놀람과 공포속에서 『이건 아니야』를 외쳤을 것이다. 남의 비극을, 그것도 끔찍한 죽음으로 끝난 참사를 싸구려 영상매체의 모방극으로 추측하는 것은 온당한 일이 못될는지도 모른다. 그들에게는 그렇게 되어야 할 절실한 상황이 있었고, 이 온당치 못한 추측은 이미 고인이 된 그들에게 모독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요즈음 벌어지는 참사들을 보면 저질 할리우드 영화를 연상시키는 장면들이 너무나 많다. 지존파나 막가파 사건에서는 홍콩 폭력물의 냄새가 물씬 났다. 실제로도 우리 사회에서 영상매체가 미치는 영향력은 엄청나다. 재작년인가, 어떤 폭력물이 선풍적인 인기속에 방영될 때 초등학교 학생들의 장래희망은 조직원이 많았고, 지금도 어떤 집안에서는 장래 임꺽정이 되고 싶다는 막내 때문에 속을 썩이고 있다. ▼ 우리는 배우가 아니다 ▼ 가만히 살펴보면 아이들만 그런 것도 아니다. 몇해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마이크 앞에 서는 것이 공연히 어색하고 무안해서 되도록이면 피하고 싶어했다. 그런데 요즘은 갯가의 순박한 아낙네든, 산촌의 중년농부든 마이크만 갖다대면 기다렸다는 듯이 저마다 요구된 배역에 맞게 한마디씩 한다. 결국 사람들은 모두 배우가 되어가고 삶은 갈수록 영화를 닮아간다. 기묘한 모방의 순환이다. 인생을 모방한 것이 연극이고 그 현대적인 발전의 한갈래가 영화라면 영화 역시 모방된 인생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제 그 모방된 인생을 다시 모방하려 한다. 하지만 삶이 영화일 수는 없고 우리는 배우가 아니다. 신(神)을 감정의 과장과 충격적 결말만으로 한몫보는 싸구려 극작가로 만들어서는 안된다. 이문열 <작가·세종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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