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의 노동법 재개정 협상이 또 실패로 끝났다. 여야는 28일 정책위원회 의장단 접촉을 갖고 노동관계법 단일안 마련을 위한 막후접촉을 계속했으나 무노동무임금 노조전임자임금 중앙노동위원회위상 등 쟁점사항에 대해 견해차를 좁히는 데 실패하고 협상시한을 오는 8일까지로 또 연장했다. 개정 노동법이 3월부터 절름발이로 발효하고 노동계가 파업을 시작하는 등 긴박한 시기에 힘겨루기에 몰두해 있는 정치권의 모습이 개탄스럽다.
지난해 정부가 노동법 개정논의를 시작한 것은 우리 노동법체계를 국제경제 환경에 맞게 고치자는 데 근본목적이 있었다. 국제노동기구와 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 등으로 우리 노동법체계를 국제기준에 맞게 고칠 필요가 생겼다는 것이 하나의 계기였다. 이와 함께 개방화와 무한경쟁시대를 맞아 기업의 적응력과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어떤 형태로든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게 노동법 개정논의의 또 다른 출발점이었다.
이같은 목적에 비출 때 국회에서 여야가 그동안 잠정 합의한 내용조차도 상당부분 문제점을 안고 있다. 기업별 노조의 복수노조를 5년 뒤로 유예하되 상급단체에 한해 복수노조를 허용하기로 한 것은 지난해 노사개혁위원회에서의 논의추세나 국제기준에 비출 때 일단 합당하다. 그러나 노동력의 수급체계를 유연성있게 고치고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지원하는 부분 등에서 여야의 잠정합의안은 당초의 개정취지에서 멀리 벗어나 있다.
다른 무엇보다도 정리해고제를 2년 유예하기로 한 잠정합의안은 시대조류나 현실에 맞지 않는다. 정리해고제의 도입 자체가 의미있다는 주장도 있을 수 있으나 2년 뒤라는 유예기간은 노동계 반발을 무마시키는 효과는 있을망정 현실적으로 의미가 없다. 이미 산업구조의 부단한 개편필요에 따라 종신고용제는 무너지고 있다. 이같은 대세와 노동법 개정의 당초 취지를 생각할 때 정리해고제를 도입하되 노사합의를 전제로 하고 그나마 2년 뒤로 유예하는 것은 경제현실을 외면한 것이다.
그러나 여야는 그 정도의 선에서조차 협상을 타결짓지 못하고 무노동무임금과 노조전임자 임금문제를 들고 나와 다시 대결하고 있다. 노동법의 재개정이 시기적으로 급한 점을 접어두더라도 노동법체계를 국제기준에 맞게 고친다는 당초취지에 비출 때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복수노조가 허용되는 마당에 노조전임자에게 임금을 지급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맞지 않다. 파업기간중의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것은 국제 관행이다. 경제논리나 국제상식을 외면한 채 노동법 재개정문제를 당리당략이나 대통령선거를 위한 힘겨루기의 수단으로 삼아 인기끌기에 연연한다면 용서받기 어렵다는 사실을 정치권은 바로 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