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후 서울 지하철 1호선 종각역 인근 그랑서울 빌딩 3층 롤파크(LoL Park). 영하 10도가 넘는 추운 날씨에도 국내뿐 아니라 유럽 미국 아시아 각국에서 찾아온 MZ세대 팬들의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세계적인 e스포츠 스타 페이커(본명 이상혁)가 뛰고 있는 ‘2026 LoL 챔피언스 코리아(LCK)컵’ 개막전이 열리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외국인 관광객이 몰려오는 ‘K게임’ 성지를 찾아 떠나 보았다.
● 롤파크에 몰려드는 이방인들
“프랑스에서도 매일 오전 10시(한국시간 오후 5시)에 시작하는 한국 LCK컵 경기 생중계를 봤어요. 프랑스인들에게도 LCK 경기가 열리는 롤파크는 유명해서 꼭 한 번 가 보고 싶어 합니다.”
프랑스 남부 툴루즈에서 온 대학생 콜랑 씨(23)는 롤파크 로비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는 온라인에서 오픈하자마자 ‘광클’로 매진되는 티켓을 구하지 못했지만, 로비에서 생중계를 보면서 세계적인 ‘게임의 성지’에 왔다는 사실에 감격해 했다. 그는 “페이커 선수가 출전하는 롤파크 아레나를 방문하는 것이 내 ‘버킷 리스트’였다”고 말했다.
월드스타 게이머 ‘페이커’의 입간판.롤파크에 외국 MZ세대가 몰려드는 이유는 LCK의 독보적 위상 때문이다. 세계에서 LoL(리그오브레전드) 리그는 한국, 북미, 남미, 유럽, 중국, 태평양 등 6개 지역에서 열린다. 매년 각 리그 상위 팀들이 모여 최강 팀을 가리는 월드챔피언십(롤드컵)에서 15회 중 10회를 LCK 소속 한국 팀이 우승하는 업적을 이어 오고 있다.
400석 규모 롤파크에 들어서니 글래디에이터(검투사)들이 목숨을 걸고 싸웠던 로마 콜로세움을 연상케하는 원형 경기장(아레나)이 보였다. 아레나 중앙,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헤드셋을 쓰고 마우스를 클릭하면서 싸우는 각 팀 5명 전사와 코치가 분주하게 소통하고 있다.
14일 서울 종로구 ‘치지직 롤파크’에서 열린 ‘2026 LoL 챔피언십 코리아(LCK)컵’ 개막전 DN수퍼스와 kt롤스터의 경기를 보며 응원하는 국내외 관람객들. 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게임이 최고조에 이르는 순간. 중앙 대형 스크린에는 용을 비롯한 전투 캐릭터들이 불을 뿜고, 칼을 휘두르며 맞붙는다. 전세가 시시각각 변하는 가운데 객석에서 KT롤스타와 DN수퍼스를 응원하는 팬들의 함성과 환호성, 탄식과 박수가 쏟아진다. ‘세상에. 컴퓨터 게임을 보면서도 이렇게 뜨겁게 응원할 수 있구나.’ 이종격투기나 복싱, 프로 축구와 야구 경기장에서 함성을 질러 대는 모습과 다르지 않다.
축구 팬들이 영국 프리미어리그 축구장에 가 보고, 야구 팬들이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구장에 가고 싶어 하는 것처럼 전 세계 1030세대 게이머들은 롤파크에 와 보고 싶어하는 것이다. 롤파크 아레나 로비에는 빌지워터(Bilgewater) 카페가 있다. 빌지워터는 LoL 속에 나오는 지명으로 ‘모든 사람이 열린 상태로 만나 교류하는 장소이자 세계관’을 상징한다.
롤파크 ‘빌지워터 카페’에서 응원 문구를 쓰고 있는 팬들.이곳에서 팬들은 경기를 기다리며 종이에 응원 문구를 쓴다. 금발의 서양 청년뿐 아니라 일본 대만 홍콩 등에서 온 소녀 팬도 많다. 게임이 끝나면 선수들이 나와 팬들과 사인회를 갖는다. BTS 공연을 보러 온 ‘아미’들이나 e스포츠 스타를 만나러 온 팬들 모습은 다르지 않다.
롤파크 로비에는 라이엇게임사가 운영하는 PC방과 공식 굿즈 스토어가 있다. 또 LCK 출전 10개 팀 유니폼도 전시돼 있다. 페이커가 뛰고 있는 T1은 SK텔레콤이 후원한다. 다른 팀들도 농심, KT, 한화생명, KIA, 한진그룹, 부산은행 같은 유수의 기업이 후원한다. 굴지의 기업들이 후원하는 이유는 모든 경기가 스트리밍 채널 ‘네이버 치지직’과 ‘숲(Soop)’을 통해 세계에 생중계되기 때문이다. 매일 400만 명 이상이 시청하는데, 이 중 60%는 해외 시청자다.
로비에서 만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온 파헤드 씨는 “사우디 리야드에서도 2년 전부터 e스포츠월드컵(EWC) 대회가 열리고 있다”며 “초대 대회 우승자 페이커를 눈앞에서 볼 수 있다니 감격할 뿐”이라고 말했다.
● K게임과 K푸드의 만남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찾아가는 또다른 게임 관광지 중 하나는 한국관광공사가 운영하는 ‘하이퍼 그라운드(HYPER Ground)’다. 2023년도 월드챔피언십이 한국에서 열렸을 때 대대적인 게임 관련 전시가 열렸던 곳이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K게임 진수를 느끼려면 PC방을 가야 한다. LCK컵 참가 팀들은 서울 홍대, 강남, 동대문 등에 MZ세대 및 외국인 팬들과 소통할 수 있는 플래그십 PC방을 열고 있다. 일반 PC방과 달리 각 팀 선수단 사진으로 꾸며져 있고 레스토랑 및 굿즈샵 등을 갖춘 엄청난 규모의 공간이다.
서울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T1 베이스캠프’의 포토존.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앞에 있는 ‘T1베이스 캠프’는 페이커 팬들의 성지 순례 장소다. 입구에는 T1 선수들의 대형 액자가 걸려 있고, 굿즈샵에는 안경을 쓴 페이커 선수 캐릭터가 서 있다. 외국인 관광객들은 사진 찍기에 바쁘다. 굿즈샵에는 라이엇게임 피규어뿐 아니라 T1 선수들 사진이 들어 있는 기념품이 가득하다. K팝 팬들이 아이돌 가수 굿즈를 사는 것과 비슷한 풍경이다. 페이커의 시그니처 의자로 꾸며진 PC방에서는 ‘페이커 세트’ ‘T1 핫도그’ ‘칸나 불고기 덮밥’ 등 선수들 이름이 붙은 시그니처 메뉴가 가득하다.
요즘 PC방은 K푸드를 즐기는 레스토랑으로도 인기다. 1990년대 초반 태동한 PC방 먹거리는 원래 컵라면, 스낵류, 캔음료 등 간단한 메뉴에 그쳤다. 그러나 요즘은 떡볶이와 삼겹살, 파스타와 스테이크, 튀김, 핫도그, 피자에 카페 수준 음료와 디저트까지 갖춰 ‘K미식 공간’으로 승부를 하고 있다.
PC방 ‘레드포스 아레나’의 짜계치(왼쪽)와 치킨덮밥.서울 강남구 지하철 7호선 신논현역 앞에 있는 ‘레드포스 아레나’가 대표적이다. 농심이 후원하는 레드포스팀 이름을 딴 만큼 음식에 진심이다. 미국 요리학교 CIA(Culinary Institue of America) 출신 셰프 2명이 수제 피자와 다채로운 요리를 제공하고 있다. 농심의 각종 라면을 활용한 요리도 선보인다. ‘짜계치’(짜파게티에 계란후라이와 치즈를 올려먹는 라면)와 ‘불계치’(불닭볶음면에 계란+치즈), ‘삼겹짜파게티’(짜파게티 위에 삼겹살 얹은 것) ‘새우깡’을 모티브로 한 새우튀김우동 등 창의적인 요리가 펼쳐진다.
레드포스 광주 상무지구점과 첨단점에서는 미슐랭 1스타 김완수 셰프가 스테이크와 랍스터, 생과일 주스 등 프리미엄 메뉴도 제공한다. 추운 날씨에 혼자 밥 먹을 일이 있다면 식당에서 멀뚱멀뚱 있지 말고 PC방에 와서 게임을 하거나 영화를 보면서 혼자 밥 먹는 것도 괜찮은 선택일 듯 싶다.
서울 동대문 쇼핑몰 던던에 있는 복합 게임문화 공간 ‘젠지GGX’.거대한 우주선이 내려앉은 듯한 서울 동대문구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 앞에는 ‘젠지 GGX’가 있다. 젠지e스포츠가 지난해 6월 동대문 쇼핑몰 던던에 오픈한 복합 게임문화 공간이다. 젠지를 상징하는 블랙과 골드로 꾸며진 라운지 공간에서는 LCK 경기를 생중계로 볼 수 있는 대형 스크린이 있다. 젠지의 호랑이 마스코트 ‘젠랑이’ 앞에서 팬들이 유니폼을 입고 사진을 찍으며, 오뚜기가 운영하는 식음료 코너에서 ‘젠진라면’ ‘쵸비빔면’ ‘튀김만듀로’ 등 이색 음식도 맛볼 수 있다. 독일에서 온 관광객 루카스 씨(21)는 “젠지 ‘쵸비(Chovy)’ 선수의 무호흡 파밍 실력을 좋아하는 게임 마니아”라며 “서울 여행은 아트와 테크놀러지를 함께 즐길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게임과 미식이 결합된 차세대 복합문화공간 ‘한국형 PC방’은 해외로도 활발하게 진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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