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1 아들 실업팀 받아준 오상은 “네 실력 과소평가해 미안”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2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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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준성, 8월 대통령기 일반부 우승
실업팀 형들 꺾고 당당히 실력 입증
오상은 “아들이 나보다 성장 빨라”
오준성 “아버지만큼만 잘하고 싶어”

아버지 오상은 미래에셋증권 탁구단 남자부 감독(왼쪽)이 경기 안양 호계다목적체육관에서 아들 오준성과 등을 맞대고 업어주면서 엄지 척을 하고 있다. 안양=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아버지 오상은 미래에셋증권 탁구단 남자부 감독(왼쪽)이 경기 안양 호계다목적체육관에서 아들 오준성과 등을 맞대고 업어주면서 엄지 척을 하고 있다. 안양=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내년이면 제가 2학년인데 그럼 제 위에는 한 학년밖에 없잖아요.”

다니던 학교(서울 대광고)를 나와 실업팀에 입단한 탁구 유망주 오준성(16·미래에셋증권)에게 자퇴 이유를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15일 경기 안양 호계다목적체육관에서 만난 오준성은 “그간 학생 선수 대회에 나가면 두 살 많은 형들도 이겼다. 탁구를 잘하려면 나보다 훨씬 잘하는 형들과 겨뤄야 하는데 계속 학교에 있으면 시간만 낭비할 것 같았다”고 말했다.

하루 이틀 만에 내린 결정은 아니었다. 오준성은 탁구 선수로 성공하기 위해 학업을 중단하고 실업팀에 진출하고 싶다는 의사를 꾸준히 밝혀 왔다. 하지만 아버지 오상은 프로탁구리그(KTTL) 미래에셋증권 탁구단 남자부 감독(45)이 “아직 실력이 부족하다”며 만류했다. 오 감독은 2012년 런던 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이자 종합탁구선수권 남자 단식 최다 우승(6회) 기록을 보유한 한국 탁구의 레전드.

오준성은 경기 오정초 5학년 시절 1년 동안 나선 모든 대회에서 남자 단식 우승을 거두며 전관왕에 올랐던 탁구 기대주다. 그의 잠재력을 알아본 김택수 미래에셋증권 총감독(52)이 올 초부터 오 감독을 설득하며 꾸준히 영입 제안을 해왔다. 오준성은 성적으로 아버지의 마음을 돌려놨다. 8월 열린 제38회 대통령기 전국대회에서 일반부 실업팀 형들을 꺾고 고등학생(1학년)으로는 사상 처음 정상에 오른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 대회 결승에서 오준성이 마주한 상대 선수 강동수(28·미래에셋증권)의 벤치에는 오 감독이 앉아 있었다. 오준성의 경기를 본 오 감독은 “그동안 내가 아들을 과소평가해 왔다”며 실업팀 입단을 허락했다.

오준성의 키는 173cm로 아버지(188cm)보다 작지만 탁구 실력 성장 속도는 오 감독을 능가하고 있다. 아버지보다 1년 빠른 초등학교 2학년 때 탁구에 입문해 3년 만에 전국대회 남자 단식 첫 우승을 일궜다. 오 감독이 중학교 3학년 때 거둔 성적이었다. 전국종별선수권대회 우승도 오준성은 중학교 1학년 때 이뤄내며 아버지의 성적표(중3)를 2년 앞당겼다. 오 감독은 “준성이 나이 때 나를 생각하면 아들이 항상 한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며 “준성이가 어디까지 성장할지 한계가 가늠이 안 된다”고 설명했다.

아버지와 같은 오른손 셰이크핸드 전형인 오준성은 백 드라이브를 중심으로 한 수비형으로 경기 운영 방식까지 오 감독을 닮았다. 오 감독은 “서브, 포핸드 드라이브 등 공격 기술의 완성도는 보완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경기를 보는 시야가 넓은 건 나보다 낫다. 빠르게 이어지는 랠리 상황에서도 상대가 어디 있는지를 잘 파악해 칠 곳에 변화를 준다”고 칭찬했다.

KTTL리그에서 탁구인 부자(父子)가 지도자와 선수로 한솥밥을 먹게 된 건 오상은-준성 부자가 처음이다. 리그 남자부 최연소 선수이기도 한 오준성은 “어렸을 때 누군가 내게 꿈을 물어보면 아버지가 이루지 못했던 올림픽 금메달을 얘기하곤 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아버지가 일군 성적까지만 가는 것도 정말 어려운 일이란 걸 깨닫고 있다”며 “이달 말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태극마크를 다는 것부터 차근차근 목표를 이뤄가겠다”고 다짐했다.

안양=강동웅 기자 leper@donga.com
#탁구#오준성#오상은#오상은-준성 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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