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상 들끓던 빈민가… 나는 지옥에서 왔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1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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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카타르 월드컵 D―4]브라질 대표팀 공격수 안토니의 자전적 고백
축구화 없어 맨발에 피 흘려도 공만 있으면 무서울 것 없었고
옆집 와이파이로 축구영상 보며, 아약스-맨유… 드디어 구원받았다

‘작은 지옥’이라고 불리는 브라질 빈민촌에서 태어난 안토니는 옆집 와이파이로 유튜브에 접속해 브라질 축구 전설들의 플레이를 보고 배우면서 월드컵 데뷔 준비를 마쳤다. 사진 출처 브라질 축구대표팀 인스타그램
‘작은 지옥’이라고 불리는 브라질 빈민촌에서 태어난 안토니는 옆집 와이파이로 유튜브에 접속해 브라질 축구 전설들의 플레이를 보고 배우면서 월드컵 데뷔 준비를 마쳤다. 사진 출처 브라질 축구대표팀 인스타그램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건 바란 적도 없었다. 그저 공처럼 생긴 물건만 하나 있으면 완벽한 하루였다.”

브라질 축구 대표 안토니(22·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16일 ‘플레이어스 트리뷴’을 통해 공개한 기고문 ‘지옥에서 온 소년(The Boy from Hell)’을 통해 이렇게 고백했다.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 대표 스타였던 데릭 지터(48)가 만든 플레이어스 트리뷴은 선수가 직접 자기 인생 이야기를 전하는 매체다.


안토니는 인페르니뉴(포르투갈어로 ‘작은 지옥’)라고 불리는 상파울루 파벨라(빈민가)에서 나고 자랐다. 대문 앞에는 항상 마약상이 진을 치고 있었고 골목에서 사람들이 피워대는 마리화나 냄새가 온 집 안에 진동했다. 배가 고플 때면 부모님과 함께 쓰는 비좁은 침대에 옆으로 누워 잠을 청해야 했다. 등굣길을 가로막고 있던 시체를 뛰어넘어 학교로 가는 발걸음을 재촉한 일도 있었다.

이 가난한 동네 꼬마들은 어떻게든 와이파이 신호가 잡히면 유튜브를 통해 브라질 축구 전설들이 남긴 기술을 보고 배우기 바빴다. 이들이 이렇게 익힌 기술을 선보이는 무대는 아이와 어른이 함께 어울려 뛰는 ‘아스팔트 리그’뿐이었다. 안토니는 그 시절을 이렇게 회상했다.

“축구화를 살 돈이 없어 맨발로 피를 흘리며 아스팔트 위에서 공을 찼다. 마약상이 앞길을 막아서면 호나우지뉴(42)처럼 플립 플랩으로 제쳤고, 네이마르(30)처럼 레인보 킥(사포)으로 공을 띄워 버스 기사의 밀착 마크에서 벗어났다. 호나우두(46)를 따라 절도범 두 다리 사이로 공을 빼낸 뒤 돌파하기도 했다. 공이 발 앞에 있으면 아무것도 두려울 게 없었다.”

안토니에게는 축구공만이 구원이었다. 그리고 매일 오전 5시에 일어나 15시간씩 일하면서 아들을 키운 아버지와 와이파이를 ‘도둑질’해도 나무라지 않는 이웃이 있었다. 제아무리 배가 고파도 발끝에서 공을 놓을 줄 몰랐던 안토니는 파벨라에서 벗어나는 것을 꿈꾸며 공을 차고 또 찼다. 그건 2018년 브라질에서 프로 선수가 된 뒤에도 변하지 않는 꿈이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데뷔전에서 출전 35분 만에 데뷔골을 기록한 뒤 세리머니를 펼치고 있는 안토니. 맨체스터=AP 뉴시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데뷔전에서 출전 35분 만에 데뷔골을 기록한 뒤 세리머니를 펼치고 있는 안토니. 맨체스터=AP 뉴시스
안토니는 2020년 2월 23일 네덜란드 아약스와 계약하면서 꿈을 현실로 만들었다. 그리고 아약스 유니폼을 입고 뛴 첫 경기부터 골을 넣으면서 자신을 파벨라에서 구원한 아약스에 보답했다. 안토니는 이듬해 10월 8일 브라질 대표팀 데뷔전에서도 역시 베네수엘라 골망을 갈랐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첫 경기였던 올해 9월 5일 아스널전 때도 마찬가지였다. 안토니는 이제 월드컵 데뷔전 득점을 노린다.

오른쪽 윙어로 뛰는 안토니는 국제축구연맹(FIFA)에서 16일 발표한 2022 카타르 월드컵 브라질 대표팀 최종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25일 세르비아와 맞붙는 조별리그 G조 첫 경기가 안토니의 월드컵 데뷔전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파벨라 어딘가에는 훔친 와이파이로 보고 배운 안토니의 왼발 킥으로 아스팔트 리그를 평정 중인 축구 소년이 또 무럭무럭 자라고 있을 것이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안토니#공격수#브라질 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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