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하게 불 켜진 방 안에 한 남자와 여자가 있다. 둥근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남자는 소파에 앉아 신문을 읽고, 여자는 몸을 돌린 채 피아노 앞에 앉아 건반을 누른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어떤 대화도 교감도 없다. 대체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토록 서늘한 냉기가 감도는 걸까.
에드워드 호퍼는 현대 도시인의 고독을 탁월하게 포착한 화가다. 그는 뉴욕의 호텔, 식당, 극장, 아파트 같은 평범한 공간 속 인물들을 즐겨 그렸다. 1932년 작 ‘뉴욕의 방’(사진) 역시 뉴욕의 평범한 가정집 내부를 담았다. 그림 속 모델은 화가 자신과 그의 아내 조세핀이다. 화가였던 조세핀은 남편 작품의 모델이자 기록자였고 동반자였다. 그러나 두 사람의 결혼생활은 결코 평온하지 않았다. 서로 사랑했지만 자주 충돌했고, 감정의 기복도 심했다.
그림 속 여인은 단순히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니다. 의기소침한 상태로 건반 하나를 무심히 건드리고 있다. 이는 남편의 관심을 끌어보려는 작은 신호처럼 보인다. 그러나 남편은 아내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신문 속 세계에만 빠져 있다. 부부의 위기는 격렬한 갈등이나 싸움에서만 시작되지 않는다. 때로는 무관심과 정서적 단절이 더 깊은 균열을 만들기도 한다. 가장 가까운 사이이기에 가장 깊은 외로움을 안기는 존재 역시 부부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그림 속 부부는 서로를 완전히 떠나지는 않는다. 그들은 여전히 같은 방 안에 머물며 같은 저녁을 보내고 있다. 아내가 누른 피아노 건반 소리는 분명 침묵 속에 건네는 대화의 신호일 터다. 어쩌면 결혼이란 완벽히 서로를 이해하는 일이 아니라, 끝내 다 이해할 수 없는 타인의 고독까지도 곁에서 견뎌주는 일이 아닐까. 때로는 침묵의 시간마저 함께 품어 안는 것, 그것이 오래된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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