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릿느릿 오는데… 흐물흐물 방망이

김배중 기자 입력 2020-06-04 03:00수정 2020-06-0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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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산 90승… 8년 연속 10승 순항 두산 유희관
평균 구속이 시속 130km도 안 되는 패스트볼로 통산 90승 고지에 오른 두산 왼손 투수 유희관. 이전보다 더 구속이 떨어진 유희관의 공에 타자들은 애를 먹고 있다. 2013년부터 7년 연속 10승 이상을 올린 유희관은 올 시즌 5경기에서 3승 1패를 기록하고 있다. 김민성 스포츠동아 기자 marineboy@donga.com
‘느림의 미학’ 유희관(34·두산)이 올해도 순항 중이다. 올 시즌 5경기에서 벌써 3승(1패)을 거뒀다. 평균자책점도 3.86으로 준수하다. 150km대의 강속구로도 실패하는 투수들이 즐비한 KBO리그에서 유희관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올해는 예전과 달라진 부분이 있다. 시즌을 치를수록 평균 구속이 소폭 상승했던 과거와 달리 구속이 떨어지고 있다. 패스트볼 기준으로 직전 경기보다 평균 구속이 떨어질 때마다 승리투수가 되는 불가사의한 모습도 보이고 있다.

프로야구 통계 사이트 스탯티즈에 따르면 유희관의 평균 구속은 시즌 첫 등판인 5월 8일 KT전에서 가장 빨랐다. 패스트볼 평균 구속은 130.4km였다. 싱커(122.7km), 슬라이더(125.3km), 커브(101.8km) 등 변화구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결과는 4이닝 10피안타 5실점, 패전이었다.


하지만 다음 경기인 5월 15일 KIA전에서 5이닝 2실점(비자책)으로 승리투수가 됐다. 직전 경기보다 패스트볼 평균 구속이 2.6km 느려졌지만(127.8km) 피안타는 4개에 불과했다. 2일 KT를 상대로 6이닝 4실점으로 3승째를 따냈다. 프로 데뷔 후 수원 KT위즈파크에서 거둔 첫 승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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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결은 역시 ‘더 느려진’ 공이다. 이날 유희관의 패스트볼 평균 구속은 125.2km에 불과했다. 보통 투수들의 슬라이더 구속에도 못 미치는 수준. 평소 120km가 넘던 싱커도 평균 116.8km에 머물렀다. 그럼에도 잘 버틴 유희관은 타선의 도움으로 수원 방문경기 첫 승, 개인 통산 90승을 거뒀다. 역대 왼손 투수 10위에 해당한다.

유희관이 선보인 ‘더 느림’은 전략이었을까. 그는 “일부러 구속을 낮춘 게 아니다. 등판한 날의 날씨가 흐려 몸이 뻐근했는데, 구속 저하로 이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공이 직전 경기보다 느려질 때 좋은 결과가 나왔다면 앞으로 전략적으로 활용해 볼 수 있을 것 같다”며 웃었다.

지난 시즌 반발력이 낮아진 공인구의 위력을 실감한 타자들은 올해 장타 생산을 위해 히팅 포인트를 앞에 두고 때리는 경향이 강해졌다. 이에 구속이 떨어지는 유희관의 공이 정확한 타격을 어렵게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 ESPN 중계진은 유희관의 45마일(약 72km)짜리 커브를 보고 “나도 칠 수 있겠다”며 웃었지만 그를 상대하는 타자들의 표정은 자못 심각하다. 청백전에서 유희관을 상대한 두산의 한 타자는 “숫자(구속)보다 빠르게 느껴진다. 수싸움도 능해 우물쭈물하면 당한다”고 말했다. 수도권 구단의 한 전력분석원은 “타자들은 대개 140km대 중후반의 공에 타이밍을 맞추고 있다. 갑자기 느린 공을 보면 적응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가끔 유희관의 공이 빨라질 때 얻어맞는 것도 그런 이유”라고 설명했다.

구속 상승보다 ‘볼 끝’ 유지에 힘쓴다는 그는 “8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 두산 투수 최다승(109승·장호연) 경신을 목표로 달리겠다”고 말한다. 팀 투수 최다승까지 앞으로 19승 이상이 남아 올해 이루기는 어렵다. 또한 시즌 후 자유계약선수(FA)가 돼 내년에도 두산에 있을지 알 수 없다. 유희관은 “두산에서 은퇴하는 게 꿈이었다. 볼 끝만 안 죽으면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씩 웃었다.

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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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kbo#두산 유희관. 패스트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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