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선호에 쏟아진 기립박수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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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원컵 아이스하키 1차전
세계 최강 캐나다에 2-4 분패했지만
깜짝 놀란 랭킹 2위 러시아 관중들 “코레야” 연호하며 진심으로 응원
한국, 김상욱 2골로 앞서다 역전패… “조직력 다듬으면 메달 가능성 있다”

“코레야, 코레야∼.”

러시아 관중의 응원과 박수 소리가 점점 커졌다. 경기가 끝난 뒤 마침내 러시아 관중은 한국 선수들을 위해 일제히 일어섰다. 진정 어린 기립박수였다.

한국 수비수 이돈구(안양 한라)의 목소리는 감격에 젖어 있었다. “캐나다 선수들은 아이스하키 기계인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붙어 보니 그 선수들도 사람이더라. 우리가 압박을 하자 밀리는 모습까지 보였다”고 말했다.

세계 제2의 아이스하키리그인 러시아아이스하키리그(KHL)의 심장 모스크바에 위치한 VTB 아이스팰리스 경기장. 14일 이곳에서 열린 2017 유로하키투어 채널원컵 한국-캐나다의 첫 대결은 기적과도 같은 성장을 이룬 한국 아이스하키 대표팀에 깜짝 놀란 러시아 관중의 기립박수와, 한국을 맞아 뜻밖에 고전한 세계 최강 캐나다의 당혹감, 스스로의 성장에 자신감을 갖게 된 한국 선수들의 기쁨이 함께했다.

한국은 그동안 세계랭킹 1위이자 올림픽 3연패를 노리는 캐나다와의 대결 기회 자체가 없었다. 실력별로 1∼7부 리그로 나뉘어 치러지는 세계 아이스하키 무대에서 한국은 변방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세계 최강국들이 참가하는 이번 대회에 한국은 올림픽 개최국으로서 초대받았다. 그동안 성장해온 한국 아이스하키의 실력을 제대로 검증해 볼 수 있는 무대다.

남자 아이스하키 세계랭킹에서 캐나다는 1위, 러시아는 2위다. 금지약물 복용 혐의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징계를 받아 개인 자격으로 2018 평창 겨울올림픽에 출전해 금메달을 노리는 러시아에 캐나다는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다.

경기가 진행될수록 러시아 관중은 진정으로 한국을 응원하기 시작했다. 한국 대표팀이 퍽을 잡을 때마다 함성은 더욱 커졌다. 한국 선수들이 보여준 순간 스피드와 조직력은 팬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결과는 2-4, 한국의 석패였다. 그렇지만 4882명의 관중은 경기 후 한국 대표팀에 기립박수까지 보냈다. 2011년 평창이 겨울올림픽 유치를 확정 지은 직후 북미의 한 아이스하키 전문 블로거는 “한국과 캐나다가 맞붙으면 162-0으로 캐나다가 이길 것”이라는 글을 올린 적이 있다. 하지만 이날 한국은 하늘과 땅 차이라던 캐나다를 맞아 당당히 맞섰다.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가 평창 올림픽 불참을 선언하면서 캐나다는 KHL 선수들을 중심으로 대표팀을 구성했다. 그렇지만 25명의 엔트리 가운데 23명이 NHL 출신이었고, NHL에서 200포인트 이상을 기록한 선수만 6명이었다.

경기 시작 2분 57초에 첫 골을 허용할 때만 해도 불안한 기운이 감돌았다. 하지만 NHL 우승컵인 스탠리컵을 2차례나 받은 백지선 감독 아래 몸과 정신을 단련한 한국 선수들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1피리어드 5분 1초에 김기성-김상욱 형제(이상 안양 한라)가 동점골을 합작했다. 김기성이 시도한 슈팅이 캐나다 골리의 패드에 맞고 튕겨 나오자 김상욱이 가볍게 쳐 넣었다.

지난 시즌 아시아리그 최우수선수(MVP) 김상욱은 1피리어드 17분 44초에 역전골까지 터뜨렸다. 뜻밖의 반격에 캐나다 선수들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캐나다에서 귀화한 골리 맷 달튼(안양 한라)의 눈부신 선방까지 이어지며 한국은 2피리어드 중반까지 2-1로 앞서 나갔다. 뒷심 부족으로 역전패했지만 캐나다의 간담을 서늘케 한 명승부였다.

백 감독은 “환상적이고 재미있는 경기를 했다. 우리 선수들이 최고의 팀을 상대로 좋은 경험을 쌓았다. 스피드와 조직력을 앞세운 한국 특유의 아이스하키를 발전시키면 평창 올림픽에서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은 평창 올림픽 본선 조별리그에서도 캐나다와 맞붙는다.

캐나다 윌리 데자르댕 감독은 “한국 선수들은 영리하게 경기를 풀어나갔다. 개개인이 아니라 팀 전체가 유기적으로 움직였다. 팀을 정말 잘 만들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칭찬했다.

한국 선수들에게는 승패를 떠나 소중한 자신감을 얻은 게 큰 수확이었다. 김상욱은 “조직력을 좀 더 가다듬는다면 올림픽 메달도 꿈만은 아닐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은 15일 세계랭킹 4위 핀란드, 16일에는 세계랭킹 3위 스웨덴과 역시 사상 첫 맞대결을 펼친다.
 
모스크바=이헌재 기자 uni@donga.com
#2017 유로하키투어 채널원컵#감독 백지선#한국 수비수 이돈구#한국 아이스하키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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