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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스포츠

100만원짜리 중고 총 쏘던 소년, ‘올림픽 전설’이 되다

입력 2016-08-11 03:00업데이트 2020-03-09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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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 2016 리우올림픽]
‘오뚝이’ 진종오, 세계 사격 역사상 첫 올림픽 3연패
“17세 때 정식으로 총을 잡은 이후 사격이 너무 좋아 즐기다 보니 여기까지 왔습니다. 사격이 곧 제 인생이었던 셈이네요.”(진종오·37·kt)

자신만의 총이 갖고 싶어서 어머니를 졸라 산 100만 원짜리 중고 총으로 사격을 시작한 강원 춘천의 한 소년은 이제 세계 사격 역사에 대기록을 남긴 선수가 됐다. 11일 리우 올림픽 남자 사격 50m 권총에서 사격 역사상 최초의 올림픽 3연패를 달성한 진종오 얘기다. 이날 그의 손에는 중고 총이 아닌 자신만을 위해 특별 제작된 빨간 총이 들려 있었다. 진종오는 “올림픽에서 많은 기록을 세워 내 총이 박물관에 전시되도록 만들겠다”고 말했다.

○ 오뚝이 정신

대한사격연맹 관계자는 “10m 공기권총 2연패에 실패한 뒤 한동안 종오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런데 50m 권총 경기 전날이 되자 미소가 살아났다”고 말했다. 이날 진종오는 지인들에게 “이미 지나간 일을 어쩌겠나. 이 악물고 젖 먹던 힘까지 쏟아보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사격은 심리적 안정이 중요한 종목이어서 한 번 실수를 하더라도 빨리 극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진종오는 학창 시절 두 차례 큰 부상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위기를 극복하는 집념을 갖게 됐다. 그는 고등학생 때 교통사고로, 대학생 때는 축구를 하다 넘어지면서 쇄골을 다쳤다. 사격선수에게 치명적인 부상이었지만 진종오는 병실 천장에 표적을 붙여놓고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는 등의 노력으로 빠르게 회복했다. 경남대 재학 시절 은사인 조현진 창원시청 감독은 “종오는 절대로 중도에 포기하는 법이 없다. 이번 올림픽에서도 실수를 딛고 일어서는 ‘오뚝이 정신’을 바탕으로 정상에 올랐다”고 말했다.

진종오는 2013년 개정된 결선 방식인 ‘서바이벌 제도’의 중압감도 극복했다. 차영철 kt 감독은 “서바이벌 도입 당시 사격계에는 진종오를 견제하기 위한 장치라는 말이 나왔었다. 한때 바뀐 제도에 적응하지 못해 성적이 떨어졌던 진종오지만 올림픽을 앞두고 국제 대회 등을 통해 경기 감각을 되찾았다. 그는 어떤 방식도 자신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했다”고 말했다.


○ 독종의 자신감

진종오의 아버지 진재호 씨(66)가 들려준 아들과 술에 얽힌 이야기 하나.

진종오는 현 중국 사격대표팀 감독인 왕이푸의 초청으로 중국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당시 왕이푸는 고량주를 맥주잔에 담아 끊임없이 진종오에게 건넸다. 진종오는 거부하지 않고 모든 술을 마셨지만, 술자리가 끝날 때까지 정신을 잃지 않았다. 결국 왕이푸는 “진종오는 술자리에서도 총을 쏠 때만큼이나 독하다”며 백기를 들었다.

주당 진종오지만 올림픽을 앞두고는 자기 관리를 위해 술을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고 훈련에만 몰두했다. 리우 올림픽을 앞두고는 브라질 출국 전날까지도 야간 훈련을 했다. 차 감독은 “종오가 런던 올림픽 때와 달리 야간 훈련까지 하는 모습을 보고 올림픽 3연패에 대한 욕심이 크다는 것을 느꼈다”며 “올림픽에서 메달을 다섯 개(금메달 3개, 은메달 2개)나 땄는데도 끊임없이 동기부여가 되는 모습이 신기했다”고 말했다.

‘독종’ 진종오의 모습은 그가 매일 기록하는 사격 일지에도 나타난다.

그는 자신의 몸 상태와 사격장의 환경, 밝기 등이 적힌 일지를 반복해 읽어보면서 컨디션을 조절한다. 진종오는 “내가 은퇴를 하고 나면 일지를 책으로 써서 후배 양성에 도움이 되도록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각고의 노력은 성적에 대한 자신감으로 이어진다. 진종오는 국제 대회에 출전할 때 비행기 좌석을 비즈니스로 마련해 달라고 소속팀에 당당히 요청한다. 컨디션만 잘 관리되면 충분히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 진종오는 리우 올림픽을 앞두고는 차 감독에게 “50m 권총은 산전수전 다 겪어봤기에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 “사격은 네 운명”

진종오의 어머니 박숙자 씨(65)는 “아들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한 번 더 따고 돌아오면 ‘태어나기 전부터 넌 사격 선수가 될 운명이었다’고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진종오가 태어나기 1년 전인 1978년에 택시를 타고 외출한 박 씨는 택시기사에게 요금을 지불하고 동전으로 거스름돈을 받았다. 그런데 집에 와서 동전의 촉감이 이상해 꺼내 보니 그해 서울에서 열린 세계사격선수권대회 기념주화였다. 박 씨는 “사격 대회 기념주화를 갖게 된 뒤에 종오의 태몽도 꿨다”며 “꿈속에서 개울가를 걷다가 링 하나가 보여 얼른 주웠더니 안쪽에 ‘대통령 최우수상’이라고 적혀 있어서 집에 가져와 장롱에 넣었다”며 웃었다. 런던 올림픽 직후 진종오는 “어머니의 태몽 덕분에 내가 금메달리스트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사격 관계자들은 “진종오는 총을 고정시키는 능력이 타고났다”고 말한다. 이러한 능력은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것일까. 아버지 진 씨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나는 군대에 있을 때도 사격을 못해서 벌을 많이 받았다. 사격 선수로서의 능력은 아들이 스스로 타고난 것”이라고 말했다.

리우데자네이루=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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