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2위 계속 찔렀으니 이젠 1위 차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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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준 오랜 부상 딛고 펜싱 월드컵 2위

서울 태릉선수촌 주변 삼계탕 집에서 만난 펜싱 플뢰레 국가대표 허준(27·세계랭킹 13위·사진)은 빨간색 운동복을 입고 있었다. 가슴에는 태극기가, 등에는 ‘KOREA’ 다섯 글자가 큼지막하게 박혀 있는 대표팀 단체복이었다. 너무 국가대표 티를 내는 것 아니냐는 말에 그는 “좀 알아보라고요(웃음)”라고 했다.

허준은 6일부터 3일간 일본 도쿄에서 열린 펜싱 국제월드컵대회에서 2위에 올랐다. 지난해 9월 인천 아시아경기 은메달 이후 413일 만에 시상대에 올랐다. 올 1월 파리 월드컵 단체전 경기 중 입은 부상이 긴 부진의 시작이었다. “갑자기 무릎이 너무 아프더라고요. 마지막 라운드에서는 아예 다리가 안 구부러졌어요.” 검사 결과는 무릎 연골 파열. 작은 키(168cm) 때문에 다른 선수들보다 두세 배 더 뛸 수밖에 없었던 그의 무릎이 결국 탈이 난 것이었다. 곧바로 수술대에 올랐다.

수술 후 재활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한 채 그는 5월 대회에 나갔다. “올림픽이 얼마 안 남았으니까요.”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출전 여부는 내년 3월 발표되는 세계랭킹을 기준으로 결정된다. 수술로 이미 월드컵 2개 대회를 건너뛴 그로서는 국제펜싱연맹(FIE) 포인트를 쌓기 위해 더 이상 쉬고만 있을 수 없었다.

2012년 런던 올림픽 펜싱에서 한국이 종합 2위(금 2, 은 1, 동 3)라는 사상 최고의 성적을 거둘 때 허준은 경기장이 아닌 군대 내무반에 있었다. 올림픽 티켓을 따지 못해 국군체육부대에 입대했기 때문이다. 허준에게 리우 올림픽 출전이 간절한 이유다. “금메달을 따는 건 중요하지 않아요. 운동선수로서 올림픽이라는 무대에 서 보는 것 자체가 꿈이죠.”

이번 월드컵 준결승에서 그는 인천 아시아경기 때 1점 차로 이겼던 일본 오타 유키(세계랭킹 2위)를 다시 만났다. 결과는 15-10, 허준의 완승이었다. 오타 유키는 올 하반기 출전한 모든 대회에서 시상대에 올랐다. “유키는 대회에서 볼 때마다 기술과 타이밍이 좋았어요. 키도 저랑 별 차이 안 나거든요.” 오타 유키의 키는 171cm. 펜싱선수로는 작은 편이다. “너무 잘하니까 어떤 기술을 잘하는지, 어떤 타이밍에 공격하는지 영상을 찾아서 계속 봤어요.” 허준은 결승에서 세계랭킹 1위 알렉산더 마시알라스(21·미국)에게 10-15로 패했지만 이번 메달로 다시 희망을 갖게 됐다.

허준은 16일부터 계룡시민체육관에서 열리는 제20회 김창환배 전국 펜싱대회에 출전한다. 삼계탕 한 그릇에 추가한 밥 한 공기까지 비운 허준은 “계룡산에서 좋은 기운 좀 받아와야겠다”며 웃었다.

임보미 기자 bom@donga.com
#펜싱 월드컵#허준#플뢰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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