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야기] 목동의 목소리여, 안녕

  • 스포츠동아
  • 입력 2015년 10월 14일 05시 45분


13일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2015 타이어뱅크 KBO 리그’ 준플레이오프 3차전 넥센히어로즈와 두산베어스 경기가 열렸다. 김은실 장내 아나운서 겸 홍보팀 대리. 목동|김종원기자 won@donga.com
13일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2015 타이어뱅크 KBO 리그’ 준플레이오프 3차전 넥센히어로즈와 두산베어스 경기가 열렸다. 김은실 장내 아나운서 겸 홍보팀 대리. 목동|김종원기자 won@donga.com
장내 아나운서 김은실 대리 ‘목동에서의 8년’

“목소리 하나로 참 행복했던 것 같아요.”

목동구장에 울려 퍼졌던 그 목소리는 어느덧 종착역을 향하고 있다. 현대 시절부터 히어로즈의 탄생을 온 몸으로 껴안은 넥센 홍보팀 김은실 대리(사진)가 주인공이다. 넥센은 내년부터 고척스카이돔을 새 홈구장으로 쓴다. 이에 앞서 작은 변화도 생겼다. 그녀는 목동구장을 끝으로 수원구장부터 이어져온 길고 길었던 장내 아나운서를 그만둔다. 홍보팀에 전념하고자 내린 결단이다. 8년여 목동의 추억을 가슴에 담아둔 채다. 그녀는 “‘목소리 예쁘다’는 몇몇 팬 분들의 칭찬에 큰 힘을 얻곤 했다. 정도 많이 들었는데, 아쉽고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웃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과거’로 표현될 두 글자에는 눈물과 환희가 얼룩져있다. 2010년 6월 25일. 그날을 떠올리면 아직도 눈시울부터 붉어진다. 함께했던 동료 고 이화수 대리가 작고하던 날이다. 홈경기가 예정된 하루. 그의 아내에게서 문자 한통을 받았다. ‘오늘을 넘기기 어렵다’는 짧은 글이었다. 문병에서 병색이 완연한 그를 보며 가슴이 저렸다. 오후 6시27분 문자 한통이 왔지만 이미 장내 소개에 들어갔다. 뒤늦게 확인한 메시지는 이 대리의 부고를 전했다. 그토록 원망스러운 문자는 없었다. 흐르는 눈물에 목이 메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자꾸 울먹이니까 티가 나서 그런지 울지 말라는 메시지를 많이 받았어요. 선수 소개를 제대로 할 수 없었죠.”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최근 3년은 꿀 같은 행복이었다. 빈 자리가 많았던 수원구장과 달리, 많은 관중이 목동구장을 찾아 넥센을 열렬히 응원했다. 최근 3년간 가을야구를 경험하며 잊지 못할 추억을 그들에게 선사했다. “관중이 꽉 찬 사직이나 잠실 등을 보면서 부럽다는 생각을 했어요. 목동구장을 많이 찾아주셔서 밝고 신나게 (장내 소개를) 했던 것 같아요.”

마이크가 켜진 줄도 모르고 애국가를 따라 불렀다. 5회초 수비가 끝나고 클리닝타임을 안내해 선수들의 짓궂은 놀림을 듣기도 했다. 이젠 하나하나 모두 소중한 기억이다. 시즌 중반부턴 후임자와 번갈아가며 장내 소개를 진행하고 있다. 김 대리는 “홈경기에서 한번도 방송실을 떠나본 적이 없었는데, 후임자가 안내방송을 할 때 허둥지둥하는 나를 발견했다”고 말한다. 정들었던 박병호는 벌써부터 아쉬움을 전한다. 김민성도 응원을 건넨다.

목동구장에서 8년간 포스트시즌을 포함해 549경기를 개근했다. 아파도 참고 또 참고 맡은 역할을 해냈다. 무사했고, 무탈한 데 대해 감사한다. 넥센 이장석 대표는 그녀의 노고를 인정해 고척스카이돔 개막전을 은퇴경기(?)로 잡아줬다. “대표님께서 배려해주셔서 감사하다”는 김 대리는 “가끔 (우천순연을 위해) 비도 기다리곤 했는데 그럴 일이 없어졌다”며 “비가 새던 기자실, 목동의 전경 하나하나가 그리울 것 같다”고 웃었다.

목동 | 박상준 기자 spark4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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