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촌이 꼭 한개는 막을게”…김병지, 역시 클래스가 달랐다

  • 스포츠동아
  • 입력 2015년 5월 15일 05시 45분


영웅은 위기에서 빛나는 법이다. 전남 골키퍼 김병지(왼쪽)는 13일 수원과의 FA컵 32강전 원정경기 승부차기에서 맹활약하며 후배들에게 16강 티켓을 선물했다. 승리 직후 뒤 팀 후배 김영욱이 그에게 달려들고 있다. 수원|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영웅은 위기에서 빛나는 법이다. 전남 골키퍼 김병지(왼쪽)는 13일 수원과의 FA컵 32강전 원정경기 승부차기에서 맹활약하며 후배들에게 16강 티켓을 선물했다. 승리 직후 뒤 팀 후배 김영욱이 그에게 달려들고 있다. 수원|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수원전 승부차기…어린후배들에 약속
4-3 승리 이끌고 FA컵 16강 티켓 선물
패배 정성룡에 격려 눈빛…훈훈함 빛나

‘내 뒤에 공은 없다!’

K리그 클래식(1부리그) 베테랑 골키퍼 김병지(45·전남)가 가장 좋아하는 문구다. 그의 ‘카카오톡’ 글귀이기도 하다. 골문을 지키는 수문장의 뒤로 볼이 넘어가는 순간은 축구에서 가장 위태로운 상황이다.

13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수원과의 FA컵 4라운드(32강전). 120분 혈투가 끝난 뒤 전광판 스코어는 3-3 동점을 알리고 있었다. 90분 정규시간 동안 2번, 연장전 30분 가운데 1번 김병지의 뒤로 볼이 흘렀다. 자존심은 일찌감치 구겨졌다. 이어진 승부차기. 여기서 진가가 발휘됐다. 수원 1번 키커 카이오의 슛을 보란 듯이 막아냈다. 새파란 후배, 아니 조카들과의 약속을 지킨 삼촌의 표정이 밝게 빛났다.

운명의 승부차기 순번이 정해지고, 어깨동무를 한 선수들이 모였다. 김병지는 잔뜩 굳은 어린 동료들을 보며 한마디를 했다. “삼촌이 꼭 1개는 막을게.” 감독(노상래), 코치(김태영)와 동갑내기지만 여전히 왕성한 활약을 펼쳐온 그는 형도, 형님이란 호칭도 멋쩍어 그냥 ‘삼촌’으로 불린다. 이제 조카들 차례였다. 2번 키커 이지남의 킥만 골대를 맞고 튕겼을 뿐 나머지 4명은 침착하게 수원 골망을 갈랐다. 승부차기 최종 결과는 4-3 승리.

벼랑 끝 승부에서 1번의 선방은 팀 전체 분위기를 바꾸는 엄청난 힘을 지녔다. “승부차기는 심리게임이다. 내가 1개를 막으면 상대의 승리 확률을 20% 줄일 수 있다. 안방이든, 적지든 똑같다. 반대로 우리 키커는 자신이 실축해도 골키퍼가 또 막아주리라는 믿음 덕분에 좀더 편안히 공을 찰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 와중에 가슴 아픈 패배를 떠안은 상대 골키퍼를 격려했다. 승부차기 시작에 앞서 포항에서 3년간 한솥밥을 먹은 수원 정성룡(30)의 손을 꼭 잡아줬다. 전남 벤치와 선수들이 환호성을 지를 때 그의 시선은 가장 먼저 정성룡을 향했다. “나도, (정)성룡이도 잘해야 했다. 전남도, 수원도 모두 좋은 경기를 해야 했다. 골키퍼들은 누구보다 서로를 잘 이해할 수 있다. 단순한 승부와는 또 다른 이야기다.”

FA컵에서 남다른 클래스를 보여준, 변치 않는 ‘기록 제조기’ 김병지는 K리그 클래식 무대에서 또 한 번 클래스를 입증할 참이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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