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리그때 약팀 히로시마 에이스… LA다저스때도 타선지원 못받아
뉴욕 양키스 이적 뒤 16승 펄펄
포스팅 시스템(비공개 경쟁입찰)을 통해 메이저리그 진출을 타진할 때만 해도 류현진(25)의 비교 대상은 다루빗슈 유(26·텍사스)나 마쓰자카 다이스케(32·보스턴)였다. 일본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투수였던 다루빗슈나 마쓰자카는 모두 5000만 달러 이상의 이적료를 전 소속팀에 안기고 화려하게 메이저리그에 입성했다.
서부지역 명문 팀 LA 다저스로부터 2573만 달러(약 280억 원)의 포스팅 금액을 제시받은 류현진은 최근 다저스와 입단 교섭을 시작했다. 그러자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또 한 명의 일본인 투수 구로다 히로키(37·뉴욕 양키스)의 이름이 거론됐다. 올해 양키스에서 16승 11패의 빼어난 성적을 올린 구로다의 목적지가 다저스가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류현진의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구로다는 양키스 잔류를 선택했다. ESPN 등 미국 언론은 21일 구로다와 양키스가 1년 1500만 달러(약 162억 원) 계약에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구로다는 다루빗슈나 마쓰자카처럼 한국 팬에게 낯익은 선수는 아니다. 하지만 류현진의 롤 모델이 될 만한 선수다.
류현진
구로다는 2008년 33세라는 다소 늦은 나이에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 그러나 다저스에서 4년, 양키스에서 1년 등 5년간 메이저리그에서 뛰면서 매년 꾸준한 성적을 올렸다. 특히 선발 투수가 갖춰야 할 최대 덕목인 ‘이닝 이터(많은 이닝을 소화하는 투수)’ 역할에 충실했다. 한국 나이로 38세였던 올해 그는 219와 3분의 2이닝을 소화했다. 다저스에서 뛰었던 지난해에도 202이닝을 던졌다. 투수로 환갑에 가까운 나이에 2년 연속 200이닝 이상을 던진 것이다. 시속 150km를 넘나드는 직구와 슬라이더, 포크볼 등을 갖춰 젊은 투수들과의 경쟁에서 전혀 밀리지 않는다. 올해도 양키스 선발진 가운데 가장 좋은 평균자책(3.32)을 기록했다. 류현진이 가장 많은 이닝을 던진 건 프로 첫해인 2006년의 201과 3분의 2이닝(18승 6패 1세이브)이었다.
류현진과 구로다는 닮은 점도 있다. 류현진은 한화에서 뛸 때 약한 팀 전력 때문에 ‘소년가장’이라 불렸다. 구로다 역시 시민구단으로 재정이 열악했던 히로시마의 에이스로 11시즌 동안 271경기에 등판해 103승 89패를 기록했다. 이 중 혼자 경기를 책임지는 완투를 74번이나 했다. 다저스 시절이던 2010년과 2011년에는 3점대 초반의 평균자책을 기록하고도 타선 지원을 받지 못해 승수보다 패수가 더 많았다. 한 미국 언론은 “구로다가 변호사를 고용해 득점 지원을 하지 못하는 타자들을 고소해야 한다”고 꼬집었을 정도다.
구로다는 전 소속팀 히로시마에 대한 애정도 깊다. 그는 “내가 이 자리에 서 있는 건 히로시마 덕분이다. 다시 일본에서 뛴다면 무조건 히로시마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요즘도 히로시마의 성적을 꼼꼼히 체크하는 등 멀리서도 응원을 보낸다고 한다. 그런 구로다는 메이저리그에 첫발을 내딛는 류현진에게 많은 걸 시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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