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비아, 비극의 땅에서 기적 일구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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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축구의 변방 잠비아는 ‘아프리카 대륙 월드컵’으로 불리는 2012 네이션스컵 결승전 개최 도시인 가봉 수도 리브르빌에 꼭 입성하고자 했다.

대륙 월드컵이라고는 하지만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71위에 불과한 잠비아의 전력을 감안하면 결승 진출은 객관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목표였다. 사정이 이런데도 잠비아가 리브르빌 입성을 목표로 삼은 데는 이유가 있다. 19년 전 아픈 기억 때문이다.

1993년 잠비아 축구대표팀을 태우고 가던 비행기가 리브르빌 상공에서 추락했다. 이 사고로 잠비아는 대표팀 18명을 한꺼번에 잃었다. 잠비아가 리브르빌 입성을 간절히 원한 건 선배들의 원혼을 달래주고 싶은 바람 때문이었다.

하늘이 도왔을까. 잠비아는 조별리그에서 FIFA 랭킹 43위 세네갈을 꺾는 등 선전하면서 조 1위를 차지했다. 이어 8강에서 수단을, 4강에선 지난 대회 준우승국인 가나까지 연파하는 이변을 연출하며 마침내 리브르빌 땅을 밟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잠비아는 13일 열린 결승전에서 아프리카 최강 코트디부아르마저 꺾고 이 대회에서 첫 우승을 차지했다. 잠비아는 FIFA 랭킹 18위 코트디부아르를 맞아 전후반과 연장전까지 120분간의 혈전을 벌였지만 득점 없이 승부를 가리지 못했고 승부차기에서 8-7의 승리를 거뒀다. 코트디부아르는 제르비노(아스널)를 포함해 주전 대부분이 유럽 리그에서 뛰고 있지만 잠비아는 유럽파가 2명뿐이다.

잠비아의 에르베 르나르 감독은 “결승전을 위해 리브르빌에 도착하자마자 19년 전 사고 현장부터 찾았다. 하늘에 새겨진 알 수 없는 힘이 우리를 도운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잠비아의 우승을 “하늘이 쓴 각본”이라고 표현했다. 잠비아의 미드필더 아이작 챈서(올랜도 파이어리츠)는 “19년 전 비극이 이번 대회에서의 선전에 큰 자극이 됐다”고 했다.

르나르 감독은 프랑스 출신이지만 잠비아 선수들과 끈끈한 팀워크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잠비아의 팀워크는 이번 대회에서 큰 힘을 발휘했다.

코트디부아르는 후반 25분 얻은 페널티킥을 디디에 드로그바(첼시)가 실축하는 바람에 승기를 잡는 데 실패하면서 우승컵을 내줬다. 3위 결정전에선 말리가 가나를 2-0으로 눌렀다.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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