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감독·명문팀 부담 극복…류중일 ‘위대한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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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28일 07시 00분


지난해 한국시리즈 준우승팀을 덥석 떠맡게 된 삼성 류중일 감독. 팀이 페넌트레이스 우승을 확정하면서 비로소 ‘불면의 밤’에서 벗어나게 됐다. 우승 기념 모자와 티셔츠를 갖춰 입은 채 기뻐하고 있는 류 감독. 잠실 |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트위터 @beanjjun
지난해 한국시리즈 준우승팀을 덥석 떠맡게 된 삼성 류중일 감독. 팀이 페넌트레이스 우승을 확정하면서 비로소 ‘불면의 밤’에서 벗어나게 됐다. 우승 기념 모자와 티셔츠를 갖춰 입은 채 기뻐하고 있는 류 감독. 잠실 |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트위터 @beanjjun

강한사자 키운 맏형 리더십

삼성, 작년 2위에도 선감독 해임 칼바람
지휘봉 잡고 초반부진에 한때 밤잠 설쳐
투타 살아나자, 초보감독 무색 1위 행진
역대 3번째 감독 첫 해 KS 우승 일낸다!

삼성의 2011시즌은 지난해 12월 30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날 삼성은 세상이 깜짝 놀랄만한 뉴스 하나를 만들어냈다. 팀을 2차례 한국시리즈 정상으로 이끌고 계약기간은 4년이나 남은 선동열(48) 전 감독을 전격적으로 해임하고, 류중일(48) 코치를 새 사령탑으로 임명했다. 구단은 선 전 감독이 자진사퇴를 원했다고 발표했으나 이를 액면 그대로 믿은 사람은 야구계에 아무도 없었다. ‘초보 사령탑 류중일’은 그렇게 탄생했다. 경북고 출신의 프랜차이즈 스타에게 실로 11년 만에 ‘대권’이 넘어온 것이다.

○불면의 밤

지난해 한국시리즈에서 SK에 4번 싸워 모두 패한 뒤 삼성에는 ‘칼바람’이 불었다. 예고된 그룹임원인사라고는 했지만 김응룡 전 사장이 물러났고, 뒤이어 김재하 전 단장도 떠났다. 우승에는 실패했어도 한국시리즈 진출이면 ‘본전’은 건진 걸로 평가할 수 있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삼성의 파격인사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검증된 명장은 계약기간 4년을 남겨놓고 하루아침에 ‘잘렸고’ 계약금·연봉 각 2억원, 3년간 총액 8억원의 초보 사령탑이 등장했다.

이런 배경에서 지휘봉을 잡은 류중일 감독은 사령탑 선임을 통보받은 뒤로 꽤 오래 “밤잠을 이룰 수 없었다.” 얼마 전 사석에서 또 한번 털어놓은 얘기다. 그는 “(신임) 사장님은 가끔 뵐 때마다 늘 ‘맘 편히 해라’며 부담을 안 주시려고 했지만 나로선 그럴 수 없었다. 작년에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한 팀인데 내가 새로 감독을 맡고 그 밑으로 떨어진다면 말이 되겠는가”라고 했다. 계속해서 “개막하고 4월까지는 성적 고민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사실 그 무렵에는 팀 전력도 만족할 만한 수준이 못되지 않았나”라고 덧붙였다.

○꿈

5월에도 삼성의 전력은 그다지 강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늘 여름이면 힘을 내는 삼성답게 6월 들어서부터 투타에 걸쳐 짜임새를 과시했다. 좌불안석이던 류중일 감독도 점차 사령탑으로서 자신감을 얻기 시작했다. 밤잠을 설치던 그가 어느새 ‘경기 끝나고 가볍게 술 한 잔 마신뒤 숙면하는’ 요령까지도 터득했다.

류 감독은 스스럼없이 자신의 일상에 대해서도 털어놓곤 한다. 그는 얼마 전 “사실 2009년 우승한 KIA 조범현 감독님처럼 나도 좋은 꿈을 한 가지 꿨다. 그만큼 값진 꿈인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다면 나중에 그 내용을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2009년 KIA의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을 일군 조범현 감독은 ‘덕아웃에서 두꺼비를 본’ 꿈과 ‘금화를 나눠주는’ 꿈 이야기로 화제를 모은 바 있다. 과연 류 감독은 무슨 꿈을 꿨을까.

○불멸의 밤

류중일 감독이 자신의 ‘꿈대로’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차지한다면 초보 사령탑으로선 대단한 족적을 남기게 된다. 1983년 김응룡(해태), 2005년 선동열(삼성)에 이어 사령탑 첫 해 한국시리즈를 제패하는 3번째 주인공이 된다. 시즌 중반 류 감독은 “나도 김응룡 감독님이나, 선동열 감독님처럼 감독 첫 해에 우승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라며 부러움을 드러낸 적이 있는데 어느덧 그 기회를 손끝으로 어루만질 수 있는 위치로까지 왔다.

아무나 프로야구 감독이 될 수는 없다. 또 아무나 한국시리즈 우승을 맛볼 수는 없다. 그 영광을 사령탑 첫 해에 이루기란 그래서 더 어려운 일임은 30년 프로야구 역사를 통해서도 입증된다. 이제 ‘초보 사령탑’ 류중일이 또 한번 그 흔치 않은 영예에 도전한다. 마지막 순간 웃을 수 있다면 류 감독에게 그날은 ‘기분 좋은 불면의 밤’, 아니 ‘불멸의 밤’으로 기억될 듯하다.

잠실 | 정재우 기자 jace@donga.com 트위터 @jace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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