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를 띄워주니, 유재학을 띄워주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4월 12일 03시 00분


모비스, KCC에 4승2패 3년만에 통합우승

‘만수’ 유감독, 호통 대신 다독이며 기 살려

“유재학, 유재학….”

모비스 선수들은 일제히 감독 이름을 불렀다. 우승 헹가래를 받기 위해 코트 중앙에 나선 유 감독은 선수들에게 몸을 맡겼다. 가볍게 허공을 나는 그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넘쳤다.

모비스 선수들은 유재학의 아이들로 불린다. 모비스에는 유 감독을 포함해 6명이 뛴다는 말도 나온다. 그만큼 모비스에서 감독의 존재는 절대적이다.

올 시즌 모비스는 유 감독과 그 아이들의 탄탄한 호흡 속에 정규 시즌 우승에 이은 통합챔피언을 거머쥐었다. 11일 1만3203명의 관중이 들어찬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모비스와 KCC의 챔피언결정전 6차전. 모비스는 경기 초반부터 KCC를 거칠게 몰아붙인 끝에 97-59의 역대 챔프전 최다 점수차 승리를 거뒀다. 4승 2패로 2007년 이후 3년 만의 정상 복귀. 갈비뼈 통증으로 복대를 차고 출전한 양동근은 19점을 넣었다. 브라이언 던스톤은 37득점 13리바운드로 모비스 골밑을 장악했다.

유 감독은 2004년 모비스 사령탑 부임 후 6년 동안 정규 시즌 우승 4회, 포스트 시즌 우승 2회의 눈부신 지도력을 발휘했다. 변화무쌍한 작전으로 ‘만수(萬數)’라고 불리는 그는 강력한 공격과 수비 조직력으로 눈에 띄는 대형 스타 없이도 번번이 팀을 정상으로 이끌었다.

최근 유 감독은 변신을 꾀했다. 4강전을 앞두고 강원 양양군의 한 리조트로 2박 3일 여행을 떠나 동해의 바람을 맞았다. KCC와 챔프전 3차전에서 패한 뒤 선수들에게 일제히 외박을 줬다. 잠실 경기에 앞서 처음으로 용인 숙소를 대신해 서울 강남의 호텔을 잡았다. 조금이라도 느슨한 모습을 보이면 호통을 치던 평소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큰 경기에서 선수들이 부담을 느낄까봐 오히려 편하게 해주고 싶었다”는 게 그의 얘기. 모비스는 2006년 챔프전에서 삼성에 4전패를 당했고 지난해에는 정규 시즌 1위에 오르고도 사상 처음으로 챔프전 진출에 실패하는 수모를 당했다. 이날 경기 전 유 감독은 “왜 얼굴들이 하얘졌냐. 부담 없이 경기를 즐기라”라고 주문했다.

최고 대우로 재계약이 유력한 유 감독은 “힘든 감독 만나서 힘들게 고생하며 운동한 선수들에게 모든 영광을 돌린다. 축하 파티에서 모두에게 마음의 잔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MVP 함지훈 “입대 앞두고 최고의 선물”▼

모비스 함지훈(26·사진)은 지난달 8일 정규 시즌 최우수선수(MVP)에 뽑힌 뒤 “큰 상을 받아 기쁘지만 아직 할 일이 남았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가 말한 남은 과제는 챔피언 결정전 우승. 2007∼2008시즌 데뷔한 함지훈은 지난해 정규 시즌 1위를 경험했지만 4강에서 탈락하는 아픔을 겪었다. 19일 입대를 앞둔 함지훈이 그토록 바라던 통합 우승과 함께 챔프전 MVP까지 거머쥐며 홀가분한 마음으로 군복을 입게 됐다. 그는 챔프전 MVP를 뽑는 기자단 투표에서 전체 69표 중 63표를 얻어 역대 5번째로 통합 MVP에 올랐다. 함지훈은 1, 2차전에서 모두 양 팀 최다인 26점과 25점을 넣으면서 2연승으로 기선을 제압하는 데 앞장섰다. 이번 챔프전 평균 16득점, 6.3리바운드, 5.8어시스트.

그는 2006∼2007시즌 통합 우승을 달성한 뒤 상무에 입대한 팀 선배 양동근의 뒤를 따르고 싶어 했다. 당시 양동근도 통합 우승뿐 아니라 정규 시즌과 챔프전 MVP까지 휩쓸며 모든 것을 이룬 뒤 입대했다. 그로부터 3년 뒤 함지훈이 양동근과 똑같은 자리에 올랐다. 함지훈은 “좋은 감독과 선배들을 만났기 때문에 큰 상을 받을 수 있었다. 나는 운이 좋은 선수다”며 동료들에게 공을 돌렸다.

농구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에 대해 “비행기를 많이 타볼 수 있을 것 같아 시작했다”는 그는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11일 하늘을 나는 듯한 기분을 만끽하며 농구 인생 최고의 하루를 보냈다.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고개 숙인 전태풍 “승진이만 있었어도…”

“(하)승진이만 있었어도 우승할 수 있었을 텐데….”

KCC 가드 전태풍은 11일 챔피언 결정전 6차전에서 모비스에 38점 차 완패를 당한 뒤 경기장을 빠져나가면서 “아직 시즌이 끝난 것 같지 않다”며 안타까워했다. 5차전에서 부상 중인 하승진을 4쿼터에 투입하는 강수를 던졌던 KCC는 6차전에서도 초반 일방적인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하승진을 기용했다. 하승진은 1-16으로 뒤진 1쿼터 6분 4초에 코트에 들어서 1분 45초를 뛰었다. 그러나 득점과 리바운드를 하지 못한 채 점수 차가 더 벌어진 5-23 상황에서 벤치로 물러났다. 1월 올스타전에서 당한 종아리 부상으로 두 달 이상 벤치를 지켰던 하승진은 상대에게 위협이 되지 못했다.

하승진의 부재를 누구보다 아쉬워한 선수는 올 시즌 귀화 혼혈 선수로 모국 무대에 데뷔한 전태풍이다. KCC는 전태풍과 하승진의 조합으로 개막 전 우승 후보로 꼽혔다. 시즌 초반 전태풍은 개인기 위주가 아닌 작전에 의한 한국식 패턴 농구에 혼란을 느끼며 고전했지만 이후 빠르게 적응했다. KCC 허재 감독은 “내가 현역 시절 전성기였을 때보다 전태풍이 더 낫다”고 할 만큼 실력을 인정했다. 하지만 그가 한국 농구에 적응을 끝내고 챔프전에 나섰을 때는 하승진이 없었다. 5월 29일 결혼하는 전태풍은 피앙세에게 약속했던 챔피언 반지 선물을 아쉽지만 내년으로 미루게 됐다.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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