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맺힘의 미학? “질투는 나의 힘”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2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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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빙속 500m 금 모태범
“언론 무관심에 오기 발동”

○ 빙속 500m 금 이상화
“피겨 인기에 묻혀 서러움”

○ 빙속 1만m 금 이승훈
“모태범-이상화 선전 자극”

#질투 1편. 지난해 12월 태릉선수촌에서 열린 밴쿠버 겨울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 미디어데이. 기자들의 질문은 500m와 1000m에서 메달이 유력했던 이규혁(32·서울시청)과 이강석(25·의정부시청)에게 집중됐다.

모태범(21·한국체대)은 들러리였다. 어떤 기자도 그에게 질문하지 않았다. “이럴 바엔 훈련이나 할걸. 대체 왜 부른 거야.”

밴쿠버 올림픽이 개막한 뒤 또 한 번의 자극이 있었다. 14일 이승훈이 아시아 선수로는 처음으로 장거리인 5000m에서 은메달을 딴 것. 모태범은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16일 몸 풀기 삼아 출전한 남자 500m에서 쟁쟁한 선배들과 외국 선수들을 모두 제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는 “언론이 내게 무관심한 게 서럽게 생각될 때도 있었다. 그래서 한 번 해보자는 오기도 생겼다. 언론의 무관심이 오히려 나에게는 큰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질투 2편. 이상화(21·한국체대)는 17일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500m에서 기적 같은 우승을 차지했다. 직후 인터넷에는 5년 전 태릉빙상장에서 이상화와 김연아(20·고려대)가 나란히 찍은 사진이 떠돌았다. 앳된 얼굴의 이상화는 휘경여고에, 아직 어린애 티를 벗지 못한 김연아는 도장중에 다니고 있었다.

이상화는 메달을 딴 뒤 “월드컵 등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도 쇼트트랙과 피겨스케이팅의 인기에 묻혀 그동안 서러웠다”고 털어놓았다. 이상화는 올해 1월 일본에서 열린 세계스프린트선수권(500m, 1000m 종목만 진행)에서 개인 종합 금메달을 땄다. 한국 여자 선수로는 최초의 쾌거였다. 이상화는 “종합 1위를 했지만 곧바로 김연아의 인기에 묻혀 버리더라. 하지만 이제 그 서러움은 모두 사라졌다”며 웃었다.

#질투 3편. 이승훈은 24일 남자 1만 m에서 12분58초55의 올림픽 기록으로 우승했다. 5000m 은메달에 이어 1만 m 금메달까지 따며 진정한 ‘장거리 챔피언’이 된 것. 그는 인터뷰에서 “(내가 은메달을 딴 뒤) 모태범과 이상화가 금메달을 따서 내가 살짝 묻혔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게 더 큰 자극제가 됐다”고 말했다.

이승훈의 금메달은 밴쿠버 올림픽 ‘질투 3부작’의 완결판이다. 이 속에서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은 금 3개, 은메달 2개라는 역대 최고 성적을 거뒀다.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기성세대들은 자신보다 남이 더 잘됐을 때 ‘백이 있다’ ‘조건이 좋다’며 외적인 요인으로 돌리려는 경향이 강했다. 학연 지연 등을 강조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라며 “하지만 지금 세대는 불만이나 서러움을 내적인 요인으로 돌리고 더욱 자신을 채찍질하는 사람이 많다. 좋은 결과를 얻은 사람 대부분은 대개 이런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 다시보기 = 이상화, 한국 女빙속 사상 첫 금메달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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