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랭킹 1위의 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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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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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무대 부담감 털고 실력 발휘 쉽지 않아멘털 경쟁력, 금 따본 선수-다크호스에 뒤져

1992년 릴레함메르 겨울올림픽부터 이번 밴쿠버 올림픽까지 다섯 차례 대회를 치르는 동안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500m에서 세계 랭킹 1위가 금메달을 딴 적은 한 번도 없다. 피겨 남자 싱글도 이번 대회에서 깨지긴 했지만 1984년 사라예보 대회 이후 현역 세계챔피언이 올림픽 정상에 선 적이 없었다. 다른 종목도 비슷하다. ‘세계 1위=올림픽 금메달’ 등식이 성립하지 않는 이유는 뭘까. 올림픽이라는 세계 최대 무대에선 결국 심리적인 부분에서 승부가 나기 때문이다.

어떤 유형의 선수가 올림픽에서 심리적으로 가장 경쟁력이 있을까. 경기력에 큰 차이가 없다는 전제하에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눠 금메달을 딸 가능성이 높은 순서대로 살펴본다. 스포츠심리학 전공인 한국체대 윤영길 교수와 인천대 성창훈 교수의 도움을 받았다.

① 이미 올림픽 정상에 서 본 선수

올림픽에서 다시 선전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 이미 정상에 서 본 경험에서 오는 자신감이 큰 장점. 정상에 오른 이후 선수들은 더는 이룰 목표가 없어져 ‘승자의 저주’라고 불리는 슬럼프를 겪지만 올림픽은 4년마다 열리기 때문에 이를 극복할 시간이 충분하다. 또 이 단계를 넘어서면 심리적으로 한 단계 더 발전한다. 남자 스노보드 하프파이프에서 숀 화이트(미국),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1000m에서 샤니 데이비스(미국)가 이번 대회에서 올림픽 2연패를 이뤘다.

② 주목받지 못한 다크호스

심리적으로 경쟁력이 있다. 올림픽이 첫 출전일 경우 경험은 부족하지만 심리적 부담감은 덜하다. ‘까짓 것 한번 해보자. 안 되면 할 수 없고’라는 도전적인 태도가 자신의 능력을 120% 발휘하게 한다. 500m 세계랭킹 14위 모태범(21·한국체대)이 금메달을 딴 것이 대표적인 예. 모태범은 “대회 전 기자회견에서 관심을 받지 못한 것이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거의 주목받지 못했던 이승훈(22·한국체대)이 스피드스케이팅 5000m에서 깜짝 은메달을 딴 것도 같은 맥락이다.

③ 세계 랭킹 1위

“세계 최강이니 당연히 올림픽에서 우승하겠지”라는 자신의 생각과 주위의 시선이 부담감으로 작용한다. 이는 초조함으로 이어지고 결국 경기 순간에 맞춰 최고의 컨디션을 만드는 데 장애가 된다. 0.01초를 다투는 스피드 종목이나 한 번의 실수로 결과가 달라지는 피겨에선 자그마한 심리적 차이가 메달 색깔을 바꿀 만큼 강력하다. 다섯 차례나 세계선수권 정상에 섰던 피겨 여자 싱글의 미셸 콴(미국), 8년간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500m 세계 1위였던 제러미 워더스푼(캐나다) 모두 올림픽 정상에는 서지 못했다.

④ 수차례 도전했지만 번번이 실패한 선수

심리적으로 좋은 성적을 낼 가능성이 가장 낮다. 계속되는 실패 경험이 자신의 마음속에 스스로 한계를 만들기 때문. 실패 경험이 계속될수록 자신이 그어 놓은 한계는 더욱 넘기 힘들다.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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