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1점…” 끝내 울어버린 신지애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1월 25일 03시 00분


코멘트
《신지애(21·미래에셋)는 골프장을 떠나 한국식당으로 향하는 차 속에서 꾹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멍하니 차창 밖을 쳐다보며 연방 코를 훌쩍거렸다. “골프 때문에 울어본 건 중학교 1학년 때 85타를 쳐서 예선 탈락한 뒤 오늘이 두 번째예요.” 그토록 꿈꿔온 순간이 바로 눈앞에서 사라졌다는 아쉬움은 크기만 했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었다. 눈이 벌겋게 충혈된 채 한숨만 지었다. 신지애가 딱 1점이 모자라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올해의 선수상을 품에 안는 데 실패했다.》

투어챔피언십 오초아에 1점차로 올해의 선수상 뺏겨
신인상-상금왕-다승 공동1위… 데뷔 첫해 3관왕 만족


24일 미국 텍사스 주 휴스턴의 휴스터니안GC(파72)에서 끝난 투어챔피언십 최종 3라운드. 1타를 까먹은 신지애는 공동 8위(6언더파 210타)에 머물며 올해의 선수 포인트에서 3점을 보태는 데 그쳤다. 반면 로레나 오초아(28·멕시코)는 이날만 5타를 줄이며 11언더파 205타로 단독 2위를 차지해 12점을 추가했다.

이로써 신지애는 올해의 선수 최종 포인트에서 이번 대회 직전까지 8점이 뒤졌던 오초아에게 159-160으로 역전을 허용했다. 1978년 낸시 로페즈(미국) 이후 31년 만에 올해의 선수와 신인상, 상금왕을 석권하려던 야망은 깨졌다. 퍼트 수가 35개까지 치솟으면서 7차례의 버디 기회를 못 살린 게 패인이었다. 처음으로 경기 후 취재진의 인터뷰 요청까지 거절할 만큼 실망은 컸다.

비록 대기록에 마침표를 찍지는 못했어도 신지애의 올 시즌 활약은 눈부셨다. 독주 끝에 평생 한 번뿐인 신인상을 차지했다. 최연소이자 한국인 선수 최초로 상금왕에 올랐다. 시즌 3승으로 오초아와 다승 공동 1위를 지켰다.

그래서인지 저녁식사를 마친 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신지애의 목소리는 다시 평소처럼 밝기만 했다. “대회 때 식이요법 탓에 못 먹은 고기를 오늘 실컷 먹었어요. 잘 먹어야 힘을 내죠. 잘한 건 오래 기억해도 못한 건 바로 까먹는 스타일이에요, 호호.”

신지애는 시즌 개막전인 2월 SBS오픈에서도 퍼트 난조에 허덕이며 예선 탈락했다. 당시 그는 “3년 동안 너무 잘돼 자만한 것 같다”고 말했다.

실패를 쓴 약으로 받아들인 그는 낯선 코스와 비거리의 한계를 극복하며 승승장구했다. 올 시즌 그의 평균 드라이버샷 비거리는 246.8야드로 98위였다. 국내 코스와 달리 깊고 질긴 러프를 피하려고 철저하게 페어웨이를 지키는 전략을 쓰다 보니 거리가 더 줄었다. 시즌 후반 들어서는 체력 저하에 허덕였다. 대신 긴 파4홀 공략을 위한 우드 샷의 정확성이 높아진 게 소득이었다. 데뷔 무대를 화려하게 장식한 신지애는 벌써부터 내년을 대비하고 있다. 새해 1월 4월 호주 골드코스트로 떠나 비거리 향상을 위해 근력 강화 위주의 강도 높은 훈련에 나선다.

한편 다음 주 결혼하는 오초아는 4년 연속 올해의 선수상을 받으며 베어트로피(최저 타수 1위)도 차지했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 일문일답

“무조건 들어갈것 같은 퍼트가 자주 빠져
속상하지만 한편 다행… 내년 목표 생겼잖아요”


풀 죽은 모습을 떠올린 건 괜한 고민이었다. 신지애는 몇 시간 전의 일은 바로 지워버린 듯 목소리가 생기에 넘쳤다. “물론 속도 상하죠. 내 힘으로 안 되는 건가 싶기도 하고요. 하지만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다른 목표가 생겼잖아요.”

신지애는 올 시즌 미국 무대에 본격 진출하면서 ‘1승과 신인상’을 우선 과제로 삼았다. 결국 시즌 3승에 상금왕까지 차지했으니 초과 달성이라는 게 그의 얘기.

‘하느님이 한꺼번에 다 주는 건 아닌가 보다’라고 묻자 신지애는 “역시 최고의 자리는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그래도 지난 1년을 돌아보면 정말 멋졌다”고 만족스러워했다. 그는 또 “1점 차든, 100점 차든 중요한 건 졌다는 사실이다. 아직은 세계 1위도 아니고 더 높은 곳에 오르기 위해 안주하기보다는 부족한 부분을 채워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덧붙였다.

뼈아픈 보기를 한 17번홀(파3) 상황도 궁금했다. 신지애는 “앞 조의 로레나 오초아가 왼쪽 벙커에 빠뜨리는 걸 봤다. 핀을 직접 안 보고 훅 바람을 의식해 오른쪽을 더 보고 쳤다. 운이 따르지 않았다”며 아쉬워했다. 17, 18번홀을 파로 마무리했더라도 올해의 선수가 될 수 있었던 그는 “리더보드를 계속 봤기 때문에 오초아의 상황도 잘 알고 있었다. 무조건 들어갈 것 같은 퍼트가 자주 빠지면서 답답했다. 막판 2개 홀에서는 긴장이 됐던 게 사실”이라고 털어놓았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