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이 말한다] 김영덕의 1982년 한국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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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0월 23일 07시 30분


통증도 못막은 ‘박철순의 투혼’원년 ‘Old Boy’ 영원히 못잊어

김영덕 전 OB 감독(왼쪽)과 박철순. 스포츠동아 DB
김영덕 전 OB 감독(왼쪽)과 박철순. 스포츠동아 DB
“한국시리즈만 되면 역적이었는데, 제가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프로야구 초창기 명장으로 꼽혔던 김영덕 감독(73). 그의 말대로 한국시리즈에서 6차례나 준우승에 그친 불운의 감독이기도 했다. 삼성 감독으로 1984년 롯데에, 86년 해태에 무릎을 꿇었다. 빙그레를 맡아 88, 89, 91년 해태를 넘어서지 못했다. 92년에도 다시 한번 롯데에 우승을 넘겨주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역대 최초의 한국시리즈 우승 감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1982년 프로야구 원년 OB 감독을 맡아 삼성과 사상 첫 한국시리즈를 펼쳤다. 벌써 28년 전. 그러나 칠순이 넘은 그는 여전히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당시의 기억을 정확히 끄집어냈다.

“(박)철순이가 후기리그 삼성과의 마지막 경기에서 번트 수비를 하다 허리를 크게 다쳤어요. 한국시리즈에 나오기 힘든 상황이었죠.”

OB 박철순은 첫해 22연승과 함께 24승4패 7세이브, 방어율 1.84를 기록한 절대 에이스. 그러나 박철순 없이 한국시리즈를 치르기에는 삼성전력이 너무나 강했다. 15승 트리오인 이선희, 황규봉, 권영호가 버티고 있는 데다 타선도 국가대표 멤버들로 구성된 최강이었다.

페넌트레이스에서 단 한번도 나오지 않았던 무승부가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기록됐다. OB는 2차전에서 0-9로 완패했다. 그런데 3차전 직전에 박철순은 진통제 주사를 맞고 뛰겠다는 의사를 전해왔다.

“2차전에 대패를 당하면서 사실 망신당하지 않게 1승이라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박철순이 뛰는 건 사실 무리였죠. 1차전 대전, 2차전 대구경기에는 아예 데려가지도 않았어요. 그런데 박철순이 그런 투혼을 발휘하면서 선수단의 사기가 무지무지 오르게 됐어요.”

3차전부터는 동대문운동장에서 펼쳐졌다. OB는 3차전 5-3, 4차전 6-5 승리로 전세를 뒤집었다. 박철순은 2경기에서 모두 세이브를 올렸다. 5차전을 박철순 없이 5-4로 승리. 박철순은 최종 6차전에 선발투수로 나서 3실점 완투승을 거뒀다. 9회초 3-3 동점에서 이선희를 상대로 신경식의 밀어내기 볼넷으로 4-3으로 앞선 뒤 김유동의 만루홈런으로 8-3 승리를 거두면서 4승1무1패로 원년 왕좌에 올랐다.

“밀어내기 볼넷이 나온 다음에 김유동을 불러 초구 직구를 노리라고 했어요. 나도 투수 출신이라 그 상황에서는 직구가 올 것이라고 생각했죠. 유동이가 원래 초구를 잘 치는 선수이기도 했고. 만루홈런이 나오는 순간 우승을 생각할 수 있었죠. 나도 허리 수술을 해봐서 아는데 통증을 참으면서 던지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박철순은 지금 생각해도 고마운 사람이죠. 본인 희생을 많이 한 선수예요. 원년에 우승하면서, 그리고 박철순이라는 슈퍼스타로 인해 OB 팬이 엄청나게 많아졌죠.”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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