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우의 필드 오브 드림] ‘봉의 추억’ 위기마다 빛났다

  • 입력 2009년 3월 18일 07시 44분


다시 봉중근이다. 봉중근이 9일 월드베이스볼 클래식(WBC) 아시아 라운드 1위 결정전에서 일본에 1-0 완봉승을 이끈 뒤 누리꾼들은 ‘열사 봉중근’이라고까지 했다.

그런 그가 18일(한국시간) 2라운드 일본과의 리턴매치에서 다시 선발의 중책을 맡았다.

결과가 어떻게 됐든 우리 대표팀은 가슴의 태극마크가 부끄럽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1회 대회를 앞두고 박찬호는 당시의 회의적인 시각과 분위기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확신에 찬 어조로 “우리들은 가슴에 태극마크만 달면 완전히 달라져요. 어디 한번 보세요. 제 말이 틀린지. 가진 능력 100% 이상 발휘된다니까요”라고 자신했고 결국 4강에 오르는 쾌거를 이뤄냈다.

그때와는 다르게 국내 프로선수들이 주축을 이룬 이번 선수단의 경기 모습, 특히 선발등판도 기회가 없을 것으로 보였던 봉중근의 활약을 보고 문득 그의 과거 모습이 떠올랐다.

○신일고 시절 관전하다 투입…팀위기 구해

1라운드 일본과의 순위 결정전에 승리의 최대 수훈갑 봉중근.

그 한경기의 호투로 ‘열사’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는 그는 신일고 2학년 재학시절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계약하고 미국에 진출했다.

1학년 때부터 남다른 투타의 재질로 주목받던 그는 2학년 때 세계청소년 대회에 참가해 맹활약을 펼쳤다.

당시 선수를 직접 접촉할 수 없었던 메이저리그 스카우트가 현지 취재를 갔던 기자에게 ‘우리가 주목하고 있다는 얘기를 전해달라’고 했다고 한다.

어쨌든 최선을 다하고 귀국했는데 당시 소속팀 신일고가 국내 대회를 치르고 있었고 공항에 도착한 봉중근은 짐을 풀 사이도 없이 곧바로 지금은 사라진 동대문구장으로 달려가 경기를 지켜봤다.

물론 경기에 나갈 생각은 하지도 않았고 관중석에서 경기를 보는데 신일고가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

봉중근은 덕아웃으로 내려갔고 바로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후 몸을 채 다 풀지도 못하고 마운드에 올라가 만루 위기를 삼진으로 처리하고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벌써 12년 전 얘기다.

이렇게 1998년 마이너리그에 데뷔한 그는 2002년 4월 23일 대망의 빅리그에 선발투수로 데뷔전을 치르게 된다. 상대는 전년도 우승팀 애리조나.

상대 투수는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 커트 실링이었다. 데뷔 경기치고는 가혹할 정도의 조건이었고 결과는 6이닝 8안타 5실점으로 패전이었다.

○빅리그 시절 실링의 스플리터 쳐내

그런데 당시 경기를 중계하면서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은 바로 그의 타격 솜씨였다.

이날 실링은 놀라울 것도 없이 8이닝 동안 단 4안타 2실점 10탈삼진을 기록하며 시즌 4승을 거뒀다. 3회 2사 후 봉중근이 메이저리그 첫 타석에 설 때까지 애틀랜타는 단 한명도 출루하지 못하고 있었다.

결과는 좌익수 라인드라이브 아웃이었지만 그 장면에 진짜 놀란 것은 봉중근이 완벽히 밀어친 공이었다. 당시 실링은 빠른 볼도 일품이었지만 스플리터 또한 예술의 경지였다.

필자가 중계했던 전성기 때 실링의 경기에서 남아있는 기억으로는 실링의 완벽히 구사된 스플리터를 정말 제대로 맞혔던 선수는 단 2명이었다.

첫 선수는 2001년 월드시리즈 7차전에서 완벽히 떨어지는 스플리터를 받아쳐 좌측 펜스를 훌쩍 넘긴 당시 뉴욕 양키스 알폰소 소리아노의 타구였고, 그 2번째가 비록 아웃 됐지만 봉중근의 타구였다.

○오늘 항일투…다시 봉중근이다

본인도 ‘만약 타자로 메이저리그에 도전했으면 어땠을까’하는 상상을 지금도 해본다고 하는데 물론 투수 봉중근도 충분히 좋은 선수이다.

그만큼 투타의 재능이 뛰어난 선수였다는 기억이 새롭다.

타고난 재능이 좋다고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걸 우리는 과거의 사례로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런 재능을 꾸준히 유지하고 한 단계 더 끌어 올리는 것도 쉽지 않다는 것 역시 잘 알고 있다.

철저한 자기 관리로 국가를 위해 뛰는 이들에게 다시 한번 박수를 보낸다.

봉중근이 7일 일본에 콜드게임 패를 당한뒤 이를 악물고 9일 일본전 등판을 자원했다는 걸 다시 한번 떠올려보자.

송 재 우 메이저리그 전문가

인생은 돌고 돌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제자리다.아무리 멀고 험난한 길을 돌아가더라도 평안함을 주는 무엇이 있다면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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