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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7월 15일 08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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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룡 삼성 사장이 사령탑을 맡았던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한국대표팀은 호주와의 2차전에서 3-5로 패하는 등 풀리그 초반 1승3패로 탈락 위기에 몰렸다가 기사회생했다. 6차전인 일본전에서 10회 연장 끝에 7-6으로 승리하는 등 4승3패로 결선에 진출, 준결승에서 미국에 2-3으로 패한 뒤 3·4위전에서 숙적 일본을 다시 3-1로 꺾고 동메달을 차지했다.
베이징올림픽 본선을 앞두고 상대 전력은 차치하고라도, 한국야구 역사상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유일한 대회였던 2000년 시드니올림픽 당시와 현재의 대표팀 전력을 비교해보면 베이징에서의 메달 가능성을 간접적으로 미리 점검해 볼 수도 있다.

2000년 대표팀과 2008년 대표팀의 엔트리 구성의 차이점은 마운드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김응룡 감독은 정대현, 임창용, 박석진 등 3명의 잠수함 투수를 포함한 11명으로 투수진을 꾸렸지만 “게임 일정상 야수 피로도가 더 쌓일 수 있다”며 투수를 10명으로 구성한 김경문호에서 잠수함 투수는 정대현뿐이다. 김경문 감독 역시 국제대회 특성상 잠수함 투수의 중요성을 알고 있지만 임창용(야쿠르트)의 합류 불발, 김병현(전 피츠버그)의 불참 등 악재가 겹치면서 결국 정대현만 승선시켰다.
시드니 대표팀과 베이징 대표팀은 김동주와 이승엽이 변함없이 중심타선에 선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지만 김경문 야구의 특성상 빠르고 젊은 선수가 야수진으로 대폭 발탁됐다는 점이 김응룡 감독 시절과 차이점이다.
소속팀 두산에서도 빠른 야구를 선호하는 김경문 감독은 이종욱 고영민 이용규 정근우 등 언제든지 도루를 성공시킬 수 있는 선수들을 주로 뽑았다. 김응룡 감독은 대회 직전 거포 송지만이 부상으로 전력에서 빠지자 당시에는 드물었던 ‘멀티 플레이어’인 내야수 김태균(당시 삼성·현 SK 코치)을 발탁하는 등 수비 위주로 팀을 구성했다.
2000년 대표팀 멤버와 2008년 대표팀 구성원을 단순 비교하는 데에는 무리가 따를 수 있다. 그러나 8년 전 당시와 지금의 선수를 비교할 때 대표팀 선수들의 지명도가 예전만 못한 것은 사실이다. 김경문 감독의 스타일이 이름값보다는 투지와 열정을 더 중시하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김도헌 기자 dohon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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