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한국인이고 싶다"

  • 입력 2002년 6월 28일 14시 30분


그랜트 왈 기자-CNN 제공
그랜트 왈 기자-CNN 제공
2002 한일 월드컵은 한국에 매료된 다수의 외국인 한국팬들을 낳은 것이 틀림없다. 미국 스포츠 전문 권위지인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의 중견 기자 그랜트 왈씨도 그 중 한 명.

왈 기자는 월드컵 취재로 32일간 한국에 머물면서 한국과 한국인을 사랑하게 된 사연을 '한국에 띄우는 러브레터(A love letter to Korea)'라는 제목으로 적었다. 이 기사는 CNN 웹사이트 월드컵 특집란에 24일 게재됐다.

☞ A love letter to Korea 원문과 그 요약보기

왈 기자는 기사 첫머리를 "이제 나를 명예 한국계 미국인으로 불러달라. 한국에 머무른지 32일째지만 축구경기장에서 뿐만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도 한국이 주는 놀라움은 끝날 줄을 모른다"라고 시작했다.

그의 한국 사랑은 한국인의 친절한 행동에서 비롯된 듯 하다. 그는 횡단 보도에서 비를 맞고 서있는 자신에게 한 중년 남성이 다가와 미소를 지으며 우산을 씌워준 것에 감동하고, 동료 여기자가 피곤에 지쳐 지하철 안에서 잠을 청하다가 옆에 앉은 나이 지긋한 한국 여성에게 안마를 받은 경험담에 감동한다. 이 한국 여성은 심지어 '자장가'까지 불러줬다는 것.

왈 기자는 처음에는 미국팀이 일본이 아닌 한국에서 경기하게 돼 실망했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지금와서 생각하니 "그것은 행운이었다"라고 실토했다.

그는 한국전이 벌어질 때마다 붉은 인파들로 채워진 거리가 기쁨으로 들썩이던 것에, 그리고 그 자리에 자신이 있었다는 사실에 무엇보다 감격해 했다. 개최국이 월드컵에서 우승할 때 벌어지는 거리의 축제에 함께 참여하는 것이 그의 오래된 꿈이었던 것이다.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 때 그 곳에 가 있지 못했던 아쉬움은 이제 한국에서 채워졌다.

왈 기자의 한국 사랑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는 한국 축구대표팀의 가차없고 거칠면서도 기본기가 잡힌 플레이를 사랑한다. 그는 심지어 한국 방송인들이 경기를 중계하면서 격정적이 되고 심지어 눈물까지 흘리는 모습도 사랑한다고 고백했다. 또 그는 한입 베어 삼켰을 때 이마에 땀을 송송 솟게 만드는 김치도 사랑한다고 말했다.

한편으로 그는 중견 축구담당 기자의 입장에서 한국팀의 경기에서 판정 시비를 문제삼는 유럽인들에게 '닥치라'고 호통친다.

그는 누구보다 박지성의 팬이다. 그는 포르투갈과의 경기에서 박지성이 넣은 결승골을 "경악할만한 골"이라고 칭찬하며, 이 골 덕분에 미국이 16강에 올랐으니 미국 축구 명예의 전당은 그를 위해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는 익살스런 말을 하기도 했다.

왈 기자는 "한국팀이 숙소로 쓰는 호텔에 있다가 밖으로 나갔는데 마침 한국 선수들을 응원하기 위해 몰려와 있던 한국팬들로부터 영문 모를 박수를 받은 적이 있다"면서 "이제 그 박수를 한국인들에게 되돌려준다"며 글을 맺었다.

미국 캔자스시티에서 태어난 왈 기자는 프린스턴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했으며 1996년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에 입사해 현재 대학 농구와 축구를 담당하고 있다. 부인과 함께 시애틀에서 살고 있는 그는 독서와 농구를 즐기며 매주 수요일 오후에는 축구경기를 관람한다.

<김성규기자 kim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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