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연의 야구읽기]타고투저에 감독들 피마른다

  • 입력 1999년 5월 18일 19시 06분


프로야구 감독치고 ‘위’와 ‘이’가 성한 사람이 거의 없다. 이것은 하루하루 피를 말리는 승부의 세계에서 얻은 직업병.

올해는 더욱 그렇다. 팬들이야 화끈한 타격전에 열광하겠지만 감독 입장에선 ‘이’를 악물며 속앓이를 하는 때가 더욱 많아졌다. ‘가시방석’이 오히려 편하게 느껴질 정도.

LG 천보성감독은 17일 두산과의 잠실경기에 앞서 “5,6점 리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이날은 LG가 1대6으로 크게 뒤지던 경기를 김동수의 3점홈런 등으로 뒤집어 8대7로 역전승을 거뒀으니 천감독으로선 편안한 밤을 보냈겠지만 두산 김인식감독은 밤잠을 설쳤으리라.

감독들은 운동장에선 승패에 태연한 척하지만 실제 집으로 돌아가면 뜬눈으로 밤을 지새면서 결정적인 순간의 아쉬움을 달래기 마련이다.

‘그 선수가 왜 그런 본헤드 플레이를 했을까’, ‘내가 그때 투수교체를 하는 건데’, ‘그 상황에선 작전을 걸지 않았어야 되는데…’ 등 만감이 교차할 것이다. 이러니 프로야구 감독치고 속병을 앓지 않는 감독이 있을까.

그러면 올시즌 극심한 타고투저 현상의 원인은 무엇일까.

첫째, 타자들의 힘과 기술이 향상돼 투수가 조금만 약점을 보여도 통타당한다.

둘째, 올해부터 마운드의 높이를 10인치로 엄격하게 제한했다. 더구나 국내마운드는 투수판이 움푹 파여 투수가 더욱 불리할 수밖에 없다.

셋째, 유망주들의 외국행으로 선발투수의 수급이 안되고 있는 점도 있다. 따라서 타고투저가 계속되는 한 감독들의 속앓이는 더욱 커질 것이다.

감독들로선 불같은 강속구로 타자들을 쩔쩔매게 만들었던 박철순 최동원 선동렬같은 슈퍼스타가 가끔씩 그리워지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리라.

허구연(야구해설가)kseven@nuri.net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