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목적 살인 입증할 핵심 증거
광주지검, 장 경감 자택 압수수색서 발견
경찰 ‘단순 살인’ 축소 의혹 점점 커져
피해자 유족 “파렴치한 경찰, 제 식구 감싸”
광주 도심에서 일면식도 없는 10대 여고생을 살해한 장윤기. 2026.5.14 뉴스1
여고생 살해범 장윤기(24)의 성범죄 목적 살인을 입증할 핵심 증거로 꼽혔으나 소재가 파악되지 않았던 케이블타이가 아버지 장모 경감(56)의 집에서 발견됐다. 성범죄 관련 증거를 수사팀이 아닌 장 경감이 갖고 있었거나 없애버린 정황이 잇따라 드러나면서 경찰이 의도적으로 장윤기 사건을 ‘단순 살인’으로 축소해 송치했다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 피해자 이채원 양(17)의 유족도 “가해자의 아버지가 경찰이라는 이유로 증거가 인멸되고 왜곡됐다”며 반발했다.
● ‘핵심 증거’ 케이블타이, 아버지 집에서 발견
8일 검찰에 따르면 광주지검은 전날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산구 월계동 장 경감의 자택을 압수수색해 케이블타이를 확보했다. 광산경찰서 수사팀은 장윤기를 검거한 5월 5일 그의 흰색 스포츠유틸리티(SUV) 차에서 이 케이블타이를 발견하고 영상으로도 기록했지만 정작 실물은 확보하지 않았다. 수사팀은 이 케이블타이를 증거 목록에도 담지 않았고, 발견 당시 촬영한 영상도 삭제했다. 케이블타이는 장윤기가 이 양을 결박한 뒤 범행할 목적으로 미리 준비했다는 ‘계획 범행’ 의혹을 입증할 증거로 꼽힌다.
장 경감은 사건 이튿날인 5월 6일 경찰로부터 차량을 인계받은 뒤 조수석 수납함에 있던 케이블타이를 집으로 가져간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부실 수사 의혹이 불거지자 당시 수사팀장이었던 박모 경감(58)은 장 경감에게 전화해 케이블타이의 행방을 물었으나 “없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다 7일에야 장 경감이 광산서에 전화해 “우리 집에 케이블타이가 있다. 가져가라”고 했고, 통화 직후 검찰이 압수수색에서 케이블타이를 확보했다.
케이블타이를 둘러싼 경찰의 석연찮은 의혹은 더 있다. 5월 5일 당시 수사팀과 과학수사팀이 각각 관련 영상을 찍었다. 그러나 수사팀 영상은 이달 초 박 경감의 지시로 삭제됐고, 과학수사팀 영상도 최근에서야 검찰에 송치됐다. 박 경감은 “개인 휴대전화에 사건 영상을 남겨두면 징계를 받을까 봐 지웠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과학수사팀의 영상 송치가 늦어진 것도 박 경감이 병가를 내 결재가 지연됐다는 것이 경찰의 설명이다. 박 경감은 이날 광주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했다.
성범죄 관련 증거는 케이블타이 외에도 다수가 장 경감에 의해 사라지거나 검찰 수사에서 뒤늦게 나왔다. 장윤기 차량 블랙박스 메모리카드에는 그가 범행 전 지인에게 “인생이 망하면 여고생을 납치해 성범죄를 저지르겠다”고 말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경찰은 이 블랙박스를 초동 수사에서 확보하지 않았고, 검찰의 압수수색 과정에서 비로소 증거로 확인됐다.
장윤기(23) 여고생 살인사건의 부실수사와 경찰 유착 의혹을 수사하는 광주지검 수사관들이 7일 오후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주광산경찰서에 대한 압수수색을 마치고 압수물이 담긴 상자를 들고 나오고 있다. 2026.07.07 전남광주=뉴시스광산서 수사팀이 장윤기의 원룸 주소와 비밀번호를 알려준 뒤 장 경감이 폐기한 성인용 인형 2개, 불태운 구형 휴대전화도 성범죄 관련 유력 증거로 꼽힌다. 결국 장윤기의 성범죄 목적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들이 모두 아버지 장 경감의 손을 거쳐간 셈이다.
● 피해자 유족 “어느 국민이 경찰 믿고 살겠나”
한편 이 양의 유족은 이날 오전 광주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 본인들의 딸이 억울하게 목숨을 잃었다면 증거가 사라지고 진실이 훼손되는 것을 가만히 지켜볼 수 있었겠나”며 사건 책임자에 대한 엄정 수사를 촉구했다. 또 “‘민중의 지팡이’라는 경찰이 이토록 파렴치하게 제 식구를 감싸고 진실을 은폐했다면 대한민국의 어느 국민이 경찰을 믿고 살 수 있겠나”라고 했다.
이번 의혹과 관련해 전국경찰직장협의회는 이날 성명을 내고 “장윤기 사건의 초동수사 과정에서 제기된 각종 의혹에 사죄드린다”라며 “수사 과정에서 위법하거나 부적절한 행위가 확인된다면 엄정한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도록 경찰 지휘부에 강력히 요구하겠다”고 했다. 다만 검찰 보완 수사권과 관련해서는 “특정 사건이나 일부 사례를 근거로 형사사법 개혁의 방향 자체를 되돌리려는 시도는 국민을 위한 접근이라고 볼 수 없다”며 폐지를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