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美-이란 전쟁 발발 당시 상당한 양의 원유 비축
값 급등할 사유 없었지만 전례없을 정도로 폭등 시켜”
4일 서울 서초구 만남의광장 주유소에서 시민들이 주유하고 있다. 2026.06.14. 서울=뉴시스
미국-이란 전쟁으로 유가 변동성이 커지자, 주유소에 납품할 석유제품 가격을 담합한 국내 정유사와 임직원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 수사 결과 두 정유사의 직접 담합 규모만 14조2000억 원에 이르고, 이로 인해 26조 원 상당의 경쟁제한 효과가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나희석 부장검사)는 HD현대오일뱅크·SK에너지·GS칼텍스·에쓰오일 등 정유 4사를 공정거래법위반 혐의로 기소했다고 6일 밝혔다. 검찰은 A사의 가격결정부서 부서장을 구속 기소하고, A사의 책임매니저와 법무실장, C사의 국내 영업 부문장을 각각 기소했다.
검찰 수사에 따르면 A사와 B사의 직접 담합 규모는 14조2000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C사와 D사가 앞선 두 회사의 담합으로 인상된 유가를 추종한 것까지 고려하면 26조 원의 경쟁 제한 효과가 발생한 것으로 파악했다. 즉 이들 정유사의 불공정 행위로 인해 약 26조 원의 소비자 피해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A, B사는 2024년 7월부터 2026년 2월까지 자사의 유가 정보를 공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했다. 특히 이들은 미국-이란 전쟁이 벌어진 뒤인 올해 3월 국제유가가 요동을 치기 시작하자 본격적으로 유가를 대폭 상승시키기로 합의했다.
검찰은 “4대 정유사들은 2월 28일 미국-이란전쟁 발발 당시 상당한 양의 원유를 이미 비축해둬 가격 급등의 필연적 사유가 없었다”면서 “그럼에도 모든 회사가 일제히 전례를 찾을 수 없는 규모로 입금가(정유사가 주유소에 납품하는 가격)를 폭등시켰다”고 밝혔다.
전쟁이 발발한 직후 A사와 B사의 각 석유제품 가격 결정 부서 책임자들은 B사가 A사 대비 약 30~40원 더 높은 방식으로 가격을 일시에 폭등시키기로 합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C사와 D사는 두 회사가 담합으로 정한 가격을 추종하는 방식으로 담합에 가세했다.
이 과정에서 C사의 가격 결정 부서 대화방에서는 “부문장님께서 타사나 알뜰 입금가를 보고 결정하자고 한다. 유가가 너무 급등해서 안 올리기도 뭐한데 일단 파악하고 정리하자”고 했다. D사 가격 결정부서 대화방에서는 “오늘 아침에 A사 가격 나온 거 보고 도저히 안되겠어서 추가로 고고씽” “오늘 가격 100원 더 올린다. 우리 올해 2조 벌 듯” “역시 전쟁으로 먹고사는 회사. 트럼프 만세” 등 대화를 나눈 것으로 적발됐다.
검찰은 “국제적 위기 상황을 틈타 신속한 가격 담합이 이뤄질 수 있었던 이유는 이미 A사와 B사가 상호 입금가 정보를 공유하며 일정한 간격을 두고 입금가를 결정하는 방법으로 시장점유율을 공고히 구축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며 “전쟁 직후 담합은 일시적 일탈이 아닌 만성화된 담합 관행이 국제적 위기 상황에서 노골적으로 표출된 것임을 파악했다”고 했다.
정유4사 CI. 검찰은 유가 담합 외에 유사 상승 원인으로 여겨지는 ‘전량구매계약’과 ‘사후정산제’ 관행도 재판에 넘겼다. 전량구매계약은 일반 주유소가 자신들의 석유제품만 받도록 하는 계약으로 정유사가 거래상 우월적 지위를 확보하게 하는 정유업계 관행으로 여겨진다. 즉 시장 경쟁을 제한하는 것이다.
검찰은 “정확한 제품 가격을 알지 못한 채 정유사로부터 석유 제품 전량을 구입하고 정유사에서 사후 일방적으로 책정하는 가격에 주유소 손익 등 영업활동을 전적으로 의존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불합리한 유통구조로 자영주유소들이 공급받는 석유 가격이 올라가고, 이 피해가 소비자에게 전가되는 구조다.
검찰은 또 A사와 C사 임원이 공정거래위원회 현장 조사 정보를 미리 파악해 전산 자료 및 사내 메신저 대화 삭제 등을 지시한 혐의도 포착했다. 이들은 공정거래법상 조사 방해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수사 과정에서 A, B, D사가 산업통상부에 2차례에 걸쳐 판매가를 낮춰 허위보고한 사실도 확인됐다. ‘민생물가 특별관리’ 대상인 휘발유 등 일일 판매가를 단기간에 대폭 인상해 폭리를 취한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서다.
검찰은 “담합행위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유가를 교란한 피고인들에게 죄에 상응하는 형이 선고될 수 있도록 공소유지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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