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나 배우자의 부모를 폭행한 경우 일반 폭행죄보다 2배 이상 무겁게 처벌하도록 한 형법의 존속폭행죄가 위헌 소지가 있는 만큼 판결을 취소해달라는 재판소원이 제기됐다. 과거와 달리 이혼이나 사실혼이 만연한 현대 사회에서 배우자의 부모에 대한 폭행을 무조건 가중처벌하도록 법으로 정해놓은 것은 개인사에 국가 형벌권을 과도하게 개입시킨 것이란 주장이다. 1953년 형법 제정 당시 존속폭행죄가 신설된 이후로 헌법재판소가 이 조항 자체에 대한 위헌성을 심리하는 건 처음이다.
● “法으로 孝를 강요” 재판소원
ⓒ 뉴스113일 헌재에 따르면 존속폭행 혐의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A 씨는 전날 “존속폭행을 가중처벌하는 형법 260조 2항은 위헌”이라며 이 조항을 적용한 법원의 확정 판결을 취소해달라는 재판소원을 냈다. 전문직이었지만 집행유예 판결 직후 자격이 정지된 A 씨는 “헌재 결정이 나올 때까지 법원 판결의 효력을 정지해달라”는 가처분 신청도 냈다. 헌재는 재판관 3명인 지정재판부를 구성해 사건이 심판 대상에 해당하는지 살펴본 뒤 본격적 심리에 착수할 것으로 보인다. 헌재 안팎에서는 재판소원과 함께 제기된 효력정지 가처분 사건을 재판부가 인용할지 여부에도 관심이 모이고 있다.
현행 형법상 폭행죄를 저지른 사람은 2년 이하 징역형이나 500만 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진다. 판사들이 형량을 정할 때 참고하는 가이드라인인 ‘대법원 양형기준’에 따르면 피해자가 크게 다치지 않았거나 초범 등 감경 사유가 있는 경우 징역 2~10개월을 선고하도록 돼있다. 하지만 자신의 부모나 장인·장모, 시부·시모를 폭행했을 때 적용되는 존속폭행죄에는 이보다 무거운 5년 이하 징역형이나 700만 원 이하 벌금형이 내려질 수 있다. 패륜적인 범죄라서 사회적 비난 가능성이 큰 만큼 일반적인 폭행죄보다 더 무겁게 처벌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조항이다.
배우자와 수년 간 이혼 소송을 이어가던 A 씨 역시 장모인 B 씨에 대한 존속폭행 혐의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고, 이 판결은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A 씨는 “폭행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12일 법원 확정 판결에 불복해 헌재의 판단을 구하는 ‘재판소원’ 제도가 시행되자 A 씨는 헌재에 “위헌적 법률을 토대로 한 재판”이라며 재판소원을 냈다. 배우자의 부모를 폭행할 경우 무조건 가중처벌 하도록 정해놓은 법은 위헌이고, 개별 사건을 살펴본 법관이 일반 폭행죄를 적용하되 사유를 참작해 형량을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A 씨는 “자신의 부모는 한번 부모이면 영원히 부모일 수밖에 없는 만큼 ‘패륜성’을 가중처벌목적으로 삼을 수 있을지 모른다”며 “하지만 사실혼과 이혼이 급증하는 현대사회에선 배우자의 직계존속에 대해선 법으로 효를 강요할 의미가 크지 않다”는 취지로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몇년 째 이혼 소송을 이어가면서 사실상 혼인관계가 파탄난 배우자의 부모를 폭행할 경우 존속폭행죄가 적용돼 가중처벌 대상이 되지만, 혼인신고를 하지 않아 사실혼 관계인 배우자의 부모자를 폭행할 경우 존속폭행죄가 적용되지 않는 점도 지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 日은 존속범죄 가중처벌 “위헌”, 韓은 2013년 “합헌”
일본에선 1973년 존속살해죄에 대해 위헌 결정이 내려졌다. 도치기현 야이타시에 살던 한 20대 여성이 부친으로부터 지속적으로 강간을 당하다가 결국 부친을 살해한 사건이 계기가 됐다. 당시 일본 최고재판소는 “효(孝)는 인류사회의 기본적 도의지만 존속살해에 (사형, 무기징역 등) 더 무거운 형벌을 둔 건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일본은 이후 1995년 존속상해나 존속폭행과 같은 범죄에 대해서도 가중처벌하는 조항을 폐지했다.
영미법계 국가는 존속 범죄를 가중 처벌하지 않는다. 반면 이탈리아와 아르헨티나, 프랑스, 대만은 부모나 조부모 등을 대상으로 한 존속 범죄 뿐 아니라 자녀나 손자녀 등을 대상으로 한 비속 범죄도 가중 처벌한다. 한국은 현행법상 부모가 자녀나 손자녀를 살해하는 ‘비속 범죄’의 경우에는 가중 처벌 규정이 따로 없다. 지난해 인천 송도에서 아버지가 아들을 사제 총기로 살해한 사건에서 일반 살인 혐의가 적용된 것도 이런 규정 때문이다.
이에 앞서 헌재는 2002년에는 존속상해치사죄를 가중처벌하도록 한 형법 조항에 대해 재판관 전원일치 합헌 결론을 내렸다. “직계존속에 대한 존경과 사랑은 사회윤리의 본질을 이루는 가치 질서이고, 유교사상으로 전통 문화를 계승 발전시켜온 우리나라에선 가중처벌은 합리적 근거가 있다”는 이유였다.
헌재는 2013년엔 존속살해죄를 가중처벌하도록 한 형법 조항에 대해 재판관 7대 2 의견으로 “패륜성에 비추어 고도의 사회적 비난을 받아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며 합헌 결정을 내렸다. 당시 이진성 서기석 재판관은 “범행 동기 등을 감안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형의 하한을 높여 합리적 양형을 어렵게 하며 비교법적으로도 예를 찾기 어렵다”며 “평등의 원칙에 위반된다”는 위헌 의견을 냈다.
한편 재판소원 제도가 시행된 첫날인 12일 하루 동안 헌재에는 총 20건의 재판소원 사건이 접수된 것으로 집계됐다. 13일 오후 6시까지 16건이 접수돼 이틀간 총 36건이 접수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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