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부터 더불어민주당의 공천 헌금 의혹, 쿠팡 정보유출 등 굵직한 사건들이 경찰에 몰리고 있다. 검찰 직접 수사 범위 축소에 따라 대형 사건사고의 유일한 수사 주체가 경찰이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경찰 안팎에서는 “검찰청 폐지를 앞두고 큰 사건을 맡아 국민적 신뢰를 얻을 기회”라는 기대와 “집권 여당과 관련한 사건을 공정하게 수사하지 못하면 조직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동시에 나오고 있다.
● 핵심 피의자 놓치고 ‘보완 수사’ 요구까지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강선우 의원이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30회국회(임시회) 제2차 본회의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고 있다. 2025.12.24. 뉴시스
경찰 수사력에 대한 우려는 더불어민주당에서 제명된 강선우 의원의 공천 헌금 의혹 수사에서 가장 먼저 터져 나왔다. 서울경찰청 공공범죄수사대가 이 사건을 배당받아 본격 수사에 나섰지만, 강 의원 측에 1억원을 건넨 혐의를 받는 김경 서울시의원은 지난해 12월 31일 이미 미국으로 출국했다. 경찰이 지난해 12월 29일 고발장을 받고도 사건 배당과 기초 조사를 이유로 출국금지 검토를 미루는 사이 신병 확보의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평가가 나왔다.
여기에 민주당 김병기 전 원내대표의 수사 무마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경찰 수사의 공정성은 또 다시 도마에 올랐다. 김 전 원내대표가 부인의 업무추진비 유용 의혹을 수사하던 당시 동작경찰서장에게 압력을 가했다는 폭로가 나오면서 ‘봐주기’ 의혹이 커진 것.
특히 경찰은 김 전 원내대표가 전직 동작구의원들로부터 3000만 원을 수수했다는 탄원서를 지난해 11월 접수하고도 별다른 수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뒤늦게 사건을 서울경찰청으로 이송했으나 “경찰이 권력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운가”에 대한 의구심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 마련된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서 경찰 수사관들이 압수수색을 마친 후 의원실을 나서고 있다. 2025.12.15/뉴스1민주당 전재수 의원을 비롯한 여야 정치인에 대한 통일교의 금품 제공 의혹도 경찰이 전담수사팀을 꾸려 수사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채 검경 합동수사본부로 사건을 넘기게 됐다. 경찰은 통일교 한학자 총재와 윤영호 전 통일교 본부장 등 4명을 ‘쪼개기 후원’(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송치했지만 정작 후원금을 받은 정치인은 입건하지 못했고, 그나마 송광석 전 천주평화연합(UPF) 회장을 제외한 3명은 증거 미비를 이유로 보완 수사를 요구받았다. 경찰 관계자는 “전담팀이 휴일을 반납하면서 노력했으나 결국 ‘경찰은 결론을 못 냈다’는 인상을 줄 수밖에 없게 됐다”고 말했다.
또 대규모 정보유출로 국민적 공분을 산 쿠팡 사건은 경찰이 전담 TF까지 꾸려 수사에 나섰지만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 사이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먼저 발표하며 논란을 더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 “수사 결과로 입증 못하면 조직에 위기”
경찰이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를 빚은 쿠팡을 상대로 강제수사에 나선 9일 오후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사무실에서 압수수색을 마친 경찰들이 압수품을 옮기고 있다. (공동취재) 2025.12.9/뉴스1경찰 내부에선 “이제는 수사로 실력을 보여줄 차례”라는 긴장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경찰로 향한 대형 사건들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검찰청이 폐지되는 10월 이후 수사의 주도권을 행정안전부 산하에 신설될 중대범죄수사청 등에 뺏길 수 있기 때문이다. 경찰 고위 관계자가 최근 “이제는 수사로 보여줄 차례”라고 강조한 것도 수사 결과만이 조직의 독립성과 정당성을 지킬 수 있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런 상황을 두고 전문가들은 “지금이 경찰의 기회이자 위기”라고 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경찰은 권력형 범죄에 대한 수사 경험이 많지 않은 게 사실”이라며 “얼마나 중립성을 보여줄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경찰 출신 한 변호사는 “경찰은 체질적으로 사실관계를 밝히는 데만 치중하는 경향이 있는데, 완결성 있고 속도감 있게 수사를 마무리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경찰의 인사 독립성 등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윤호 동국대 명예교수는 “승진과 인사권을 정권이 쥐고 있는 구조에서는 예속성을 끊어내기 어렵다”라며 “행안부 장관 등이 개입하는 현재의 청장 제청 방식부터 개선하는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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