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가수 따라, 게임하다가 기부… 나눔, 봉사 아닌 놀이 됐다

  • 동아일보

‘감정 나누는 일’ 된 기부 문화
‘팬덤 기부’는 심리적 장벽 낮추고, 영상-굿즈 등 콘텐츠 더해지면
참여하고 싶은 경험으로 인식해… 좋아하는 것 통한 즐거움 극대화
자원봉사-재능기부도 확대 추세… 효과 즉시 나타나 만족감도 높아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최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 설치한 사랑의 온도탑에 시민들이 쉽게 기부에 참여할 수 있도록 뽑기 기계를 도입했다. 3000원을 기부하면 뽑기 기계에서 굿즈를 받을 수 있다.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제공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최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 설치한 사랑의 온도탑에 시민들이 쉽게 기부에 참여할 수 있도록 뽑기 기계를 도입했다. 3000원을 기부하면 뽑기 기계에서 굿즈를 받을 수 있다.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제공
가수 임영웅 씨 팬클럽 ‘영웅시대’는 전국 각지에서 팬덤 이름으로 꾸준한 기부를 이어오고 있다. 임 씨 생일이나 데뷔일, 콘서트 등 의미 있는 순간마다 성금, 물품, 재난 지원 등 다양한 형태로 나눔을 실천했다. 영웅시대가 2021년부터 현재까지 기부한 금액은 약 37억 원에 이른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이 이미지와 영상, 스토리까지 만들어 내는 시대다. 그러나 영웅시대 기부처럼 좋아하는 사람과 의미를 만들어 가고 싶은 인간의 마음을 AI는 흉내내지 못한다. 역설적으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선택과 감정’에 주목하고 있다. 기부를 이끄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마음의 떨림, 안타까움이나 고마움, 책임감 같은 감정이다. 이러한 감정은 오직 인간만이 느낄 수 있다. AI 시대에 가장 인간적인 행동으로 기부가 이뤄지는 것이다.

● 좋아하는 사람과 의미 만드는 ‘팬덤 기부’ 확산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모금회)는 22일 ‘감정을 나누는 일’로 기부 트렌드가 변화하고 있다고 분석한 내용이 담긴 ‘기부트렌드 2026’을 발간했다. 기분이 소비를 움직이는 ‘필코노미’ 시대를 맞아 기부자 개인이 ‘내가 살아 있고, 사회나 타인과 연결돼 있다’는 감각을 확인시켜 줄 행위로 기부를 선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기부가 연민이나 의무보다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의미를 만드는 ‘팬덤 기부’로 나타나는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팬덤 기부는 기부를 하나의 놀이이자 문화로 끌어들이며 심리적 장벽을 낮추는 역할을 하고 있다. 모금회는 “팬덤 기부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통해 기부의 즐거움을 극대화하는 대표적 사례”라며 “좋아하는 셀럽이나 아티스트를 따라 기부하는 행위는 ‘첫 기부’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데 큰 효과를 보인다”고 했다.

모금회는 팬과 아티스트, 시민이 함께 참여하는 기부 플랫폼 역할을 확대하기 위해 나눔리더스클럽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팬클럽, 동호회, 동창회, 향우회 등 다양한 모임이 3년 이내에 1000만 원을 일시 혹은 약정 기부할 경우 가입할 수 있다. 나눔리더스클럽 회원에겐 인증패나 인증서가 제공되며, 모금회 홈페이지나 정기간행물 등을 통해 모임을 홍보할 기회도 받는다.

● “이모티콘 사면 기부도 함께” 콘텐츠와 결합

기부가 기부자의 기분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행위 중 하나로 인식되면서 콘텐츠와 결합된 기부도 늘어나고 있다. 기부트렌드 2026에 따르면 20, 30대 기부자가 꼽은 가장 트렌디한 기부의 특징은 간편하고, 새로우면서 영상, 굿즈, 게임 등 콘텐츠와 결합된 기부다. 기부가 콘텐츠와 함께할수록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라 ‘참여하고 싶은 경험’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올해 모금회는 카카오의 사회공헌 플랫폼 카카오같이가치와 협업해 ‘따뜻한 연말, 트리를 부탁해’를 주제로 연말 기부 캠페인을 운영했다. 연말 한정판 이모티콘 구매 등으로 이용자가 기부하면 트리가 완성된다. 기부금은 아동 급식비나 난방비 등으로 지원됐다.

모금회가 매년 말이면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등 전국 17곳에 설치하는 사랑의 온도탑도 콘텐츠와 결합된 기부의 한 형태다. 목표 모금액 달성 과정을 ‘온도 상승’으로 시각화한 상징물인 사랑의 온도탑은 과거 나눔 온도를 알리는 조형물에 그쳤다. 그러나 2022년부터는 포토부스 형태로 확장됐으며, 올해부터는 3000원을 기부할 경우 뽑기 기계를 통해 굿즈를 받을 수 있도록 해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하루 평균 200명 이상이 이용하는 뽑기 기계는 ‘지나다가 참여하는 기부’의 경험을 제공한다.

● 기부도 ‘수익률’ 고려… 리트머스형 기부 필요

올해 불황과 함께 고물가가 지속되면서 기부자도 투자수익률(ROI)을 고려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기부를 통해 당장 느끼는 보람이나 행복감과 함께 기부를 했을 경우 향후에 얻을 심리적 기대감이나 평판이 기부를 하지 않았을 때 후회와 재정 부담보다 클 경우에 기부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기부를 통한 효과가 즉시 보이는 재능 기부나 자원봉사, 물품 기부와 함께 일시적 기부에 대한 선호가 지속되고 있다.

모금회는 기부로 인한 좋은 기분을 체험할 수 있도록 ‘리트머스형 기부’를 제안했다. 정기 기부나 고액 기부의 만족감을 경험할 수 있도록 테스트형 기부 기회를 제공하고, 만족도에 따라 정기 기부나 고액 기부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마라톤이나 지역 여행을 통한 체험형 기부도 리트머스형 기부의 일종이 될 수 있다.

적시 기부도 확대되는 모양새다. 기후변화를 비롯해 일상 전반의 불안감이 상승하며 타이밍을 놓치지 않으려는 심리가 강해졌기 때문이다. 올해 기부자 30.3%는 국내 재난·재해 구호 분야에 기부했다. 당장 꼭 필요할 것 같아 기부한 것이다. 모금회는 “재난·재해가 ‘내 집과 가족의 안전’ 문제로 인식되면서 중요한 기부 목적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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