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알복지재단에 유언대용신탁 펀드로 5억 원을 기부한 권준하(왼쪽), 조강순 후원자. 밀알복지재단 제공
최근 밀알복지재단은 한 부부로부터 ‘유언대용신탁’ 펀드 5억 원을 기부받았다. 주인공은 권준하(81)·조강순(80) 후원자다. 유언대용신탁 펀드는 원금을 훼손하지 않고 수익금만으로 지속가능한 복지 사업을 수행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계획 기부’ 모델이다. 생전에는 펀드 운용 수익금을 기부하고 사후에는 신탁된 자산 전체가 재단에 이전되는 방식이다.
이들 부부가 기부한 후원금은 권 씨의 고향인 전북 익산의 저소득 가정 장애인을 지원하는 데 쓰인다. 장애나 질병, 실직 등으로 어려움에 처한 이들이 의료비, 주거비, 생계비 등 맞춤형 지원을 받게 될 예정이다.
권준하·조강순 부부의 기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들 부부는 2013년부터 지금까지 모교인 서울대(10억 원), 서울상대 향상장학회(5억 원), 숙명여대(20억 원), 익산남성고(10억 원)를 비롯해 사회복지공동모금회(46억 원), 원광대병원(5억 원) 등 다양한 기관에 원금 기준 총 100억 원이 넘는 금액을 기부해왔다. 이러한 공로로 2024년에는 ‘제13기 국민추천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권 후원자는 대부분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매형(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지난달 19일 밀알복지재단에서 진행된 전달식에서 그는 “인생을 살며 가장 잘한 것이 기부다. 타인을 위해 기부하니 오히려 나의 마음에 기쁨과 감사가 가득하다”고 말했다.
고령화와 상속 자산 증가에 줄 잇는 계획 기부
고령화와 상속 자산 증가에 따라 계획 기부 모델이 확대되고 있다. 계획 기부란 기부자가 자산과 상속 계획을 고려해 누구에게, 언제, 어떤 방식으로 기부할지 미리 설계하고 실행하는 체계적인 기부 방식이다. 부동산이나 증권, 보험금 등 다양한 방식이 존재한다.
계획 기부는 후원자가 원하는 목적에 맞게 후원금 사용이 가능하며 사후에도 후원자의 가치와 철학이 유지된다는 점에서 각광을 받고 있다. 밀알복지재단에도 계획 기부자들이 줄을 잇고 있다.
재단에는 1억 원 이상 후원하거나 약정한 고액 기부자 모임인 ‘컴패니언클럽’ 후원자가 48명에 달한다. 부부가 각각 10명씩, 총 20명의 장애 아동과 정기 후원을 맺고 있는 임현호·정한나 후원자는 셋째 자녀를 가지려고 고민하던 중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돕는 것이 더욱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기부를 시작했다. 이들 부부는 누적 후원금이 6800만 원을 돌파하면서 2024년 컴패니언클럽 29호 후원자로 위촉됐다.
추모 기부도 활발하다. 지난 5월 밀알복지재단은 고 박천돈 회장의 추모 기부금을 기탁받았다. 고 박 회장은 친환경 에너지 기업인 천일에너지와 천일솔라파크를 창립한 국내 조명사업의 선구자로 올해 1월 별세했다. 아들인 박상원 천일에너지 대표가 고인의 유지를 기리고자 1억 원을 기부했다.
박 대표는 “선친께서는 ‘어려운 이웃들과 나누며 살라’는 말씀을 삶으로 실천하셨기에 이번 기부를 통해 그 뜻을 잇고자 했다”고 밝혔다.
유산 기부는 대표적인 계획 기부 방법 중 하나다. 2020년 유산 기부 1호 후원자인 양효석(62) 씨를 위촉한 이후 밀알복지재단에는 유산 기부를 희망하는 후원자들의 문의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평생 버스 기사로 일해온 양 후원자는 본인이 살고 있는 1억8000만 원 상당의 빌라 1채와 본인 명의의 통장을 사후 기부하겠다고 약속했다.
밀알복지재단은 계획 기부를 생각하는 예비 후원자들을 위해 내부에 전담팀을 구성, 프라이빗 헬퍼를 두고 상담부터 후원 사업 구성, 홍보 등 맞춤형 컨시어지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밀알복지재단은 계획 기부의 한 형태로 2022년부터 ‘장애인권익기금’을 론칭하고 뜻을 함께할 후원자를 모집 중이다. 장애인권익기금은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의 생전 유산 기부를 통해 설립된 기금으로 아프리카 최빈국의 장애인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됐다.
계획 기부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제도적 뒷받침이 중요하다. 유산 기부·계획 기부의 선진국으로 불리는 영국은 ‘레거시 10’이라는 세제 인센티브 제도를 갖고 있다. 상속재산의 10%를 공익을 위해 기부하면 상속세율의 10%를 감면해주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주요 자선단체들을 중심으로 ‘한국형 레거시 10’이라 불리는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을 추진 중이다. 장애인권익기금, 유산 기부, 추모 기부 등 다양한 형태의 계획 기부를 희망할 경우 밀알복지재단에 문의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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