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공청회서 경실련 우려 표명
“입맛 맞는 판사들로 재판부 구성,
공정하겠는가…이승만 기시감 들어”
전국 법관 대표들이 모이는 전국법관대표회의는 8일 오전 경기 고양시 일산 사법연수원에서 정기회의를 연다. 사진은 이날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의 모습. 2025.12.8 뉴스1
“사법부가 정치적 하청기관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9일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주최한 공청회에선 진보 성향 단체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시민입법위원장을 맡고 있는 정지웅 변호사가 더불어민주당이 추진 중인 내란전담재판부 설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날 공청회에선 민주당의 사법개혁 법안과 관련한 사법부 안팎의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앞서 각급 법원장에 이어 법관 대표들까지 내란재판부 설치 등에 대해 “위헌 소지가 있다”는 의견을 낸 데 이어, 법학 교수와 시민사회 관계자 등 외부 전문가까지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명한 것이다. 법원행정처는 11일까지 이어지는 공청회에서 나온 의견을 수렴해 사법개혁안에 대해 사법부 전체를 대표하는 공식 의견을 낼 것으로 보인다.
● “사법의 정치화, 법치주의 퇴행으로 이어져”
이날 서울 서초구 서울법원종합청사 청심홀에서 열린 ‘국민을 위한 사법제도 개편 공청회’에는 현직 법관을 비롯해 법학 교수, 언론인, 시민사회계 인사 등이 참여해 ‘우리 재판의 현황과 문제점’ 등의 주제를 두고 발표 및 토론을 했다.
정 변호사는 내란전담재판부에 대해 “특정 정치적 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입맛에 맞는 판사들로 구성된 재판부를 만든다면 공정한 심판으로 받아들이겠는가”라며 “다음 정권에서 예를 들어 선거사범 전담부, 대형 재난사건 전담부를 만들라고 요구할 것이다. 그때마다 사법부는 정치적 하청기관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법제도를 변경하더라도 ‘속도전’은 삼가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공두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관 임용 자격을 높였다가 신규 법관이 줄어든 전례 등을 언급하며 “제도가 지나치게 급격하게 변하면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이 발생한다”고 우려했다. 이어 “사법의 정치화가 법치주의 퇴행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 법률, 재판을 일종의 무기로 사용하면 우리 사회의 제도적 정당성 수준이 저하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법관을 늘리더라도 대법관이 아닌 1, 2심에 인적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발표자로 나선 기우종 서울고법 인천재판부 판사는 “국민의 삶과 직결된 대부분 사건은 사실심(1, 2심)에서 결정된다. 재판 지연 해소는 사법 신뢰 회복의 전제조건”이라며 “사실심에 인적·물적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지방변호사회 수석부회장인 김기원 변호사도 “법관 정원을 늘려 1인당 업무량이 적정하게 조정돼야 한다”고 밝혔다.
● “재판 중계 쇼츠, 재판 신뢰에 부정적 영향”
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국민을 위한 사법제도 개편 과제 공청회’에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이 개회사를 하기 위해 단상으로 향하고 있다. 이번 공청회는 더불어민주당이 추진 중인 사법제도 개편과 관련해 각계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이날부터 사흘간 열린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내란특검법에 따라 내란 혐의 사건에 대해 의무화된 재판 중계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왜곡된 편집으로 재가공돼 재판부를 압박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법의 공정성과 투명성 강화’를 주제로 발표를 맡은 유아람 인천지법 부장판사는 “재판 중계는 국민의 알권리 충족을 중요한 목적으로 삼고 있지만, 공정한 재판 등 본연의 사법 작용을 방해하는 효과를 초래한다면 재판 공개의 원칙으로 정당화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현재도 ‘쩔쩔매는 재판장’ ‘부장판사 참교육’ 등 자극적인 제목을 가진 짧은 동영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왜곡된 동영상은 판사 개인에 대한 비난을 넘어서 재판 전반에 대한 국민적 신뢰에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은 한글로 ‘자유, 평등, 정의’ 등이 적힌 넥타이를 매고 참석했다. 그는 개회사에서 “많은 국민들이 사법에 대한 높은 불신을 보여주고 있다”며 “사법부는 깊은 자성과 성찰을 하고 사법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무엇인지 찾는 노력을 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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