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쿠팡처럼 정보 털려 분쟁조정 3배로… 배상 거부땐 손 못써

  • 동아일보

소송보다 비용 적어 분쟁조정 신청
올해 처음으로 1000건 돌파 가능성
강제력 없어 ‘불수락’땐 배상 못받아
“소송참여 않은 다른 피해자도 보호… 집단소송제 확대도 고려해야” 지적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태의 불안감이 커지는 가운데, 정부가 유출 피해에 대한 배상 등을 중재하는 사례가 5년 새 3배 이상으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유출 기업이나 기관이 조정 결과를 따를 의무가 없다 보니 조정이 무산되는 사례도 덩달아 증가하고 있다. 결국 피해자는 소송을 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 일부 승소만으로 전체 피해자에게 효력이 미치는 집단소송을 개인정보 유출 사건에도 적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개인정보 분쟁, 5년 새 3.2배로

2일 국민의힘 유영하 의원이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개인정보위)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개인정보위 산하 개인정보분쟁조정위원회(분쟁조정위)가 10월까지 처리한 분쟁조정 사건은 949건으로 집계됐다. 2020년(297건)의 3.2배다. 이 추세면 올해 관련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연간 1000건을 넘어설 가능성이 크다.

개인정보 분쟁 조정은 유출 피해 등이 발생했을 때 소송보다 적은 비용으로 빠르게 해결하고자 도입한 제도다. 위원회는 정보 유출 중지나 피해에 대한 배상 등을 권고할 수 있다. 최근 SK텔레콤 등 대형 유출 사건이 이어지면서 조정 신청 건수도 급증했다. 침해 유형별로는 ‘기술적·관리적·물리적 조치 미비’가 198건으로 가장 많았고 ‘개인정보 취급자의 누설, 유출, 훼손 등’이 167건으로 뒤를 이었다.

문제는 조정안이 강제력이 없다는 점이다. 분쟁조정위가 아무리 높은 배상액을 권고해도 유출 기업이 거부하면 조정은 무산된다. 실제 올해 불거진 SK텔레콤 유심 해킹 사건에서 3998명이 분쟁 조정을 신청했고 분쟁조정위는 “1인당 30만 원씩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하지만 SK텔레콤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같은 ‘조정 불성립’ 사례는 2020년 8건에서 올해 114건으로 늘었다. 이 중 106건(93%)은 기업 등 개인정보처리자가 거부한 경우였다. 법조계 관계자는 “쿠팡 유출 사건에서 분쟁 조정 결과가 나오더라도 쿠팡이 이를 수락하지 않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 기업과 소송 시 소비자 불리, 대책 필요

사진은 1일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쿠팡 본사 모습. 2025.12.1 뉴스1
사진은 1일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쿠팡 본사 모습. 2025.12.1 뉴스1
분쟁 조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민사소송을 통해 유출 기업에 손해배상을 강제할 수 있다. 하지만 절차가 까다롭고 비용이 많이 들어 일반인으로선 엄두를 내기 어렵다. 소장을 작성하고 증거를 모으는 과정이 까다로운 데다 변호사를 선임할 경우 수백만 원의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 또 패소하면 상대방 소송비용 일부까지 부담해야 한다.

소송 결과가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다른 피해자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집단소송은 이런 문제를 줄일 대안으로 거론된다. 그러나 현재 국내에서 이 제도는 미공개 정보 이용이나 시세조종 등 주가 조작 사건에만 적용되고, 개인정보 유출은 제외돼 있다. 2016년 인터파크 해킹 때도 1030만 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됐으나 법원은 소송에 참여한 2400여 명에게만 1인당 10만 원씩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쿠팡 정보 유출 사건에서도 일부 이용자가 소송을 제기하고 있지만, 법적 전문성이 없는 일반 소비자 입장에서는 기업과의 소송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한변호사협회는 통신 3사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드러난 9월 성명서를 내고 “현 제도에서는 피해가 광범위해도 많은 피해자가 소송 비용과 절차의 부담 때문에 권리 구제를 포기한다”고 밝혔다. 도진수 대한변협 공보이사는 “한 사건에 수천만 명이 원고로 참여한다고 가정할 경우 법원에서 이들이 실제 위임자인지 일일이 확인하는 작업만으로도 막대한 시간이 든다”고 지적했다.

소비자 권리 보호가 필요한 분야에서는 집단소송을 추가로 적용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는 전문가 제언이 나오는 이유다. 개인정보 분쟁조정 제도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일반적인 민사소송은 1심 판결 기준으로 1∼2년이 걸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분쟁조정의 경우 3개월 정도로 소요 기간이 짧다.

유 의원은 “분쟁조정위의 조정에도 불구하고 불성립된 사례가 늘어나는 만큼, 개인정보보호법 등의 개정을 통해 실효성을 늘리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SK텔레콤과의 분쟁 조정에서 피해자를 대리한 양홍석 변호사는 “분쟁조정안을 유출 기업이 수락하는지를 과징금 산정에 반영하는 방식도 검토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개인정보 유출#분쟁조정위원회#배상 권고#소비자 권리 보호#조정 불성립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