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한폭탄 된 ‘돌봄 부담’]
공공돌봄 서비스 시간 제약 등 한계… 결국 가족이 시간-비용 들여 돌봐야
장기요양보험 지출 10년새 3배 전망… “보험료율 인상-서비스 개편 등 필요”
“엄마 치매 증세가 더 심해지면 제가 직장을 그만둬야 하나 고민이에요.”
직장인 박모 씨(55)는 치매 등으로 장기요양보험 4등급 판정을 받은 80대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경기 고양시에서 살고 있다. 4등급을 받으면 요양보호사가 찾아오는 방문요양 서비스를 하루 3시간, 월 24일 쓸 수 있다. 서비스를 더 이용하면 장기요양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박 씨는 “엄마가 현재 타인의 도움을 일부 받으면 일상생활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증세가 악화하면 누군가 24시간 옆에서 도와줘야 할 것 같다. 제가 사직하는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씨처럼 고령 부모를 돌보는 중장년층이 경제적, 사회적 부담을 호소하는 가운데 공적 돌봄 체계를 지탱하는 장기요양보험 지출이 10년 만에 3배 이상으로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됐다. 핵가족화, 여성의 경제 활동 증가 등으로 예전처럼 가족이 돌보기는 어려워진 가운데 장기요양보험 지출 증가로 공적 부담마저 커지면서 돌봄 부담이 초고령사회 시한폭탄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기요양보험 재정 지출이 늘고 있지만 박 씨처럼 여전히 개인이 돌봄을 짊어지는 사례가 많다. 부모가 장기요양보험 등급 판정을 받아도 방문요양, 간호 등 재가급여 서비스가 현실적으로 보호자와 수급자가 필요한 만큼 충분히 제공되진 못한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장기요양보험에서 등급 판정을 받았다면 요양보호사가 많은 시간 동안 옆에 있어야 한다. 하지만 서비스 시간이 짧다”며 “가족이 어쩔 수 없이 나머지 시간을 돌보게 된다”고 말했다.
장기요양보험이 적용돼도 경제적 부담은 여전하다. 김모 씨의 70대 어머니는 뇌졸중으로 하루 종일 누워 지낸다. 병원에 갈 땐 사설 구급차를 이용한다. 김 씨는 “사설 구급차는 1회 이용료가 15만 원이다. 요양보호사가 도와줄 때도 있지만 교통비가 부담스러워 내가 대신 가서 대리 처방을 받기도 한다”고 했다.
부모가 건강할 때 간병보험, 요양보험, 재가급여보험 등 보험 상품에 미리 가입하기도 한다. 서울 도봉구에 사는 50대 남모 씨는 최근 친정아버지와 시어머니 간병보험에 가입했다. 남 씨는 “형제가 없어 친정아버지가 편찮으시면 돌봄 비용을 내가 다 책임져야 한다. 부담을 덜기 위해 나와 남편도 간병보험에 가입했다”고 말했다.
한국은 노인 돌봄에 대한 사적 부담 비율이 높은 편이다. 보건복지부 노인실태조사(2023년)에 따르면 일상생활에서 도움이 필요한 65세 이상 81.4%가 가족에게 도움을 받고 있다고 응답했다. 장기요양보험 등 공적 서비스를 받는다고 응답한 비율은 40%에도 미치지 못했다. 전용호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1964∼1974년에 태어난 2차 베이비붐 세대는 부모와 자식을 함께 돌봐야 하는 이중 부양을 하면서도 자신들은 부양받지 못하는 세대”라고 했다.
노인 돌봄에 개인 부담이 이렇게 높은데도 장기요양보험 대상자와 서비스 범위를 확대하기는 쉽지 않다. 노인 인구 증가로 장기요양보험 수급자는 2019년 77만2206명에서 지난해 116만5030명으로 늘어났다.
이 때문에 보험료율을 인상하지 않으면 장기요양보험 수지는 적자가 날 것으로 보인다. 건강보험공단 중기 재정 전망에 따르면 장기요양보험 지출은 올해 18조5092억 원에서 2026년 21조1306억 원, 2028년 26조9364억 원으로 증가할 것으로 추산된다. 건보공단은 현 장기요양보험료율(소득의 0.9182%)을 인상하면 2028년 수입이 26조9411억 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측했지만, 장기요양보험료는 준조세 성격이 강해 인상 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장기요양 서비스 기능 조정과 보험료율 인상, 서비스 효율화 등 공공 돌봄의 전반적인 개편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현재 장기요양 서비스는 방문요양, 데이케어센터, 방문목욕 등에서 1개만 이용할 수 있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수급자는 한 가지가 아니라 복합적인 서비스를 원한다. 현재 다른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추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며 “서비스 기능을 조절할, 이른바 장기요양 코디네이터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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