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사상 첫 남미 출신 교황으로 ‘가난한 이들의 성자’로 불렸던 프란치스코 교황(사진)이 21일(현지 시간) 선종했습니다. 전 세계 가톨릭 신자 13억 명의 영적 지도자였으며, 생전에 ‘자비의 사도’로 불리며 사랑받았던 분입니다.
교황의 원래 이름은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입니다. 1936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이탈리아 이민자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한때 화학 기술자로 일했지만 21세에 사제의 길로 들어서 1969년 사제품을 받고 예수회에 입회했습니다.
2001년 추기경으로 임명된 교황은 2013년 베네딕토 16세의 뒤를 이어 제266대 교황으로 선출되었습니다. 가톨릭 역사상 최초의 예수회 출신이면서 남미 출신으로,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을 택한 첫 교황이었습니다. 가난한 자의 수호성인이었던 프란치스코 성인의 정신을 잇는다는 의미였습니다.
신부로 있으면서 라틴 아메리카의 빈곤과 불평등을 목격했던 교황은 재임 기간 내내 교황청 개혁, 빈곤 퇴치, 환경 문제 개선, 난민 보호 등에 앞장섰습니다. 그래서 이전 교황들이 교리와 제도에 묶여 사회적 이슈에 대해 발언하기를 주저하던 것과 달리 과감한 개혁 메시지를 내놓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교황은 언제나 포용과 연대를 강조했습니다. 성 소수자, 무슬림, 비신자에게도 손을 내밀었고, 정치적·종교적 이념을 초월한 사랑과 자비를 강조했습니다. 또 검소했습니다. 호화로운 바티칸 전통을 거부하고 소형차로 이동하고 사도 궁이 아닌 게스트하우스에 머무르곤 했습니다.
한국과 인연도 깊습니다. 즉위 이듬해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한 교황은 소외되고 상처받은 이들을 가장 먼저 만났습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북한 이탈 주민, 외국인 근로자, 장애인을 초청해 그들을 끌어안고 위로했습니다.
교황의 방문은 한국 사회에 크고 깊은 울림을 남겼습니다. 11년 전 노란 리본을 달고 “울어도 됩니다. 그러나 결코 희망을 놓지 마십시오”라고 위로해 주던 교황 덕분에 “지금까지 살아올 수 있었다”고 말하는 세월호 유가족도 있습니다.
교황의 생애는 권위보다는 겸손을, 특권보다는 나눔을 선택한 삶이었습니다. 종교를 넘어 시대의 본보기가 되었던 그는 선종 직전까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휴전을 위해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의 기도가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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