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한 유튜버가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에서 집회 현장을 생중계하고 있다. 영상 화면 아래 자막으로 후원금을 받을 계좌번호가 적혀 있다. 최근 계엄 및 탄핵 정국에서 일부 유튜버는 자극적인 발언으로 지지층의 후원을 유도하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15일 윤석열 대통령의 체포영장이 집행된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 많은 유튜버가 몰려 촬영을 하고 있었다. 유튜브에는 곧 ‘초비상! 공수처 기습 시도! 애국우파 관저를 포위하자!’와 같은 제목의 동영상들이 올라왔다. 평소 이런 정치 유튜브 영상을 자주 본다는 이모 씨(68)는 16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이상한 나라에서 살지 않으려면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제대로 된 방송을 봐야 한다”며 “그래서 이런 유튜브 채널을 후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씨뿐 아니었다. 12·3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 사태를 겪으며 정치 유튜브 채널을 시청하고 후원하게 됐다는 사람이 적지 않다. 실제 채팅을 통한 후원 기능, ‘슈퍼챗’ 후원금 총액 상위 10위를 차지한 채널은 모두 정치 유튜브 채널이었으며, 주로 극우나 보수 성향이었다.
16일 유튜브 분석 사이트 플레이보드에 따르면 이달 6∼12일 슈퍼챗 수익 상위 10개 유튜브 채널 가운데 가장 많은 수익을 벌어들인 채널은 극우 성향의 유튜브 채널로, 구독자 수는 162만 명, 수익은 4985만9800원이었다. 2위는 구독자 수 53만9000명의 진보 성향 채널로 4350만300원을 벌었다. 다른 8개 채널도 일주일 수익이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에 달했다.
특히 비상계엄과 탄핵 사태를 거치며 극우 혹은 보수 성향 채널 후원금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슈퍼챗 수익 상위 10개 채널 중 단 1개를 제외하고 9개가 극우, 보수 성향 채널이었다. 이들 채널이 일주일간 벌어들인 수익은 총 1억6700만 원에 달했다. 플레이보드 사이트는 채팅창에 올라온 메시지와 후원 금액 등을 분석해 수익 총액을 추산하고 있다.
극우 유튜브 채널들은 정치적 음모론이나 강성 발언을 쏟아내며 후원을 유도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TV나 신문을 통해 접하는 뉴스가 왜곡됐고, 자신들이 진실을 보도하고 있다며 후원을 요청하는 식이었다. 한 우파 유튜브 채널 운영자는 영상을 통해 “윤석열 대통령과 관저 앞을 지키는 자유우파 국민들은 완전히 한 몸이 됐다”며 “유일하게 자유우파 유튜버만 관저 앞 투쟁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니 윤 대통령도 유튜브를 통해 이를 접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진보 성향의 한 유튜브 채널은 ‘세월호 고의 침몰설’ 등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퍼뜨리고 있었다.
실제 유튜버들이 이런 편향된 방송으로 벌어들이는 수익은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동아일보가 이들 채널을 살펴본 결과 슈퍼챗으로 후원을 받을 뿐 아니라 개인 계좌로 후원을 유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15일 한 보수 성향 유튜버가 올린 대통령 관저 체포 저지 시위 촬영 영상 하단에도 개인 계좌 번호와 함께 예금주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허위 정보 유통 채널, 차단 등 조치해야
전문가들은 이런 채널을 통해 허위 정보와 무분별한 혐오가 확산될 수 있다고 염려했다. 최항섭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는 “극우 유튜버들이 노인 세대의 분노 감정을 상업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며 “강성 발언이 혐오 정치를 더욱 부추길 수 있다”고 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최근 유튜브가 일종의 유사 언론 역할을 하고 있다”며 “유튜버들이 이처럼 극단적이게 된 이유는 자신들의 팬덤에 소속돼 있는 사람들로부터 조회수를 많이 얻고 팔로어를 늘리기 위함인데, 팬덤의 내부 논리만 따라가다 보면 잘못된 뉴스와 진짜 뉴스를 구별할 수 없게 된다”고 지적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공포와 음모론이 한국의 정치적 위기를 부추긴 방식’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배후에 ‘마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가 있다면 윤 대통령에겐 ‘태극기 부대’가 있다”고 보도했다. 이어 “대체로 한국인들은 그런 음모론을 우익 유튜버들이 퍼뜨린 온라인 선동에 불과하다고 여기지만, 뿌리 깊은 정치적 양극화 속에서 그들(유튜버)은 윤 대통령의 상황을 둘러싼 혼란을 부추겨 열성적 신봉자들을 거리로 내보냈다”고 전했다.
유현재 서강대 지식융합학부 교수는 “플랫폼 차원에서 허위 정보를 유통하는 채널에 대해 슈퍼챗을 정지시키거나, 채널 자체를 일시 차단 조치하는 등의 적극적인 개입을 촉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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