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연 하늘에 꿀벌도 길 잃고 우왕좌왕… 인류 미래가 흐릿해진다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2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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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 꿀벌 방향감각에도 영향
세계자연기금-서울대 연구팀 분석… 오염 심할 때 탐색 시간 1.7배 늘어
꿀벌 길 잃으면 식물 수분에 영향
“장기적으로 식량 부족 현상 우려”

연구진이 꿀벌 등에 무선주파수 인식장치(RFID)를 심고 있다. 세계자연기금(WWF) 제공
연구진이 꿀벌 등에 무선주파수 인식장치(RFID)를 심고 있다. 세계자연기금(WWF) 제공
매년 겨울부터 이듬해 봄까지 이어지는 미세먼지 때문에 많은 이들이 시야가 뿌옇게 변하고 숨을 쉴 때도 불편함을 느낀다고 토로한다. 공기 중에 떠다니는 작은 미세먼지 입자들이 빛의 투과를 방해하고, 빛과 먼지 입자가 부딪쳐 모든 가시광선이 반사되기 때문이다. 심한 날에는 혀에 마치 흙이 묻은 것 같은 텁텁함이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런데 미세먼지 때문에 불편함을 느끼는 건 사람만이 아니다. 꿀벌도 시야를 방해받아 방향감각이 떨어져 꿀을 찾거나 집에 돌아가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안 그래도 전 세계적으로 꿀벌 수가 줄어 문제인데, 미세먼지까지 겹치면 장기적으로 식량 문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꿀벌도 길 잃게 만드는 미세먼지
게티이미지코리아
게티이미지코리아
21일 세계자연기금(WWF)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대기오염으로 인한 꿀벌 시정거리 감소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 분석’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번 보고서는 WWF와 정수종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연구팀의 1차 연구 결과다.

연구진은 지난해 4∼7월 서울과 제주 등에서 꿀벌 집단 4개의 일벌 2500마리에게 무선주파수인식장치(RFID)를 부착해 벌의 활동 시간을 추적했다. 미세먼지가 m³당 130㎍(마이크로그램) 이상으로 치솟은 날에는 평균 먹이 탐색 활동 시간이 기존의 45분에서 77분으로 1.7배가 됐다. 미세먼지가 m³당 76㎍ 이상이면 ‘매우 나쁨’ 수준이다.

먹이 탐색 시간이 길어졌다는 건 꿀벌의 탐색 기능이 떨어졌다는 의미다. 연구진은 “꿀벌 등 곤충은 날씨가 흐릴 때 ‘선형 편광’(전기장 또는 자기장의 방향이 일정하게 진동하는 빛) 신호에 의존해 방향을 찾는다. 그런데 대기 중 미세먼지 농도가 높아지면 꿀벌이 탐지하지 못하는 선형 편광의 영역이 늘어난다”며 “길을 찾을 수 있는 영역이 줄어드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연구 결과 PM2.5 미세먼지 농도가 올라가면 벌들이 방향감각을 잃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 농작물 번식에 결정적 영향
꿀벌이 꽃과 벌집 사이에서 길을 잃으면 식물의 수분과 번식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꿀벌을 포함한 화분(꽃가루) 매개자(꽃가루를 날라 수분을 돕는 생물)가 없다면 꽃과 식물이 번식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곤충을 매개로 번식하는 식물에는 사과, 호박, 수박, 옥수수 등 우리가 먹는 대부분의 채소와 과일이 포함된다. 영국 왕립지리학회가 꿀벌을 ‘지구상 가장 중요한 생물 5종’으로 꼽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전 세계 식량의 90%를 차지하는 100대 농작물 중 71종이 벌의 수분 매개에 의존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면 세계적으로 연간 최대 5770억 달러(약 770조5800억 원)에 달한다. 벌이 수분을 제대로 못하면 세계 식량 위기가 벌어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 식량 생산 대국 중국-인도, 타격 우려
연구진은 지금 같은 산업화 추세가 계속 진행되는 상황을 가정해 2050년 꿀벌의 시야 변화를 예상해 봤다. 그 결과 중국과 인도에서 꿀벌이 길을 못 찾는 면적이 가장 많이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공장이나 자동차 등 인위적인 요인으로 배출되는 미세먼지 입자가 가장 많은 두 나라다.

중국의 위험 면적은 1.13배 늘어 520만 km²가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인도는 2050년에 2010년 대비 꿀벌이 길을 찾지 못할 ‘위험 면적’이 5배 늘어 260만 km²가 되는 것으로 추정됐다. 특히 인도 북부는 꿀벌이 길을 찾지 못할 날이 100일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됐다.

두 국가에서 늘어나는 면적은 전 세계에서 늘어날 ‘벌이 길을 헤매는 면적’의 40% 이상을 차지한다. 연구진은 “인도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과일 및 채소 생산국으로 인구의 70% 이상이 농업에 종사한다”며 “중국과 인도에서 식물의 수분과 번식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을 경우 세계적인 식량 부족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미세먼지#꿀벌#방향감각#식량 부족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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