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키운 불법증축… 지자체는 단속 책임 회피 [기자의 눈/이기욱]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1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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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욱·사회부
이기욱·사회부
“우리는 모르는 일이다. 주점 측이 우리한테 증축한다고 말한 적도 없다.”

지난달 3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해밀톤호텔 관계자는 호텔 본관 북측 주점이 불법 증축한 테라스와 관련해 “구청이 불법 증축 사실을 지난해 통보하자마자 ‘시정하라’고 주점 측에 전달했다”며 이렇게 항변했다.

불법 증축 테라스로 호텔 옆 도로는 폭이 5m에서 4m로 줄었다. 여기에 참사 당일 테라스 반대편 호텔 별관 주점이 행사 부스를 골목길에 설치하면서 도로 폭은 다시 3m로 좁아졌다. 이 때문에 참사 당시 병목현상이 가중돼 시민들의 원활한 대피를 막았다는 지적을 받는다.

호텔만의 문제는 아니다. 확인 결과 참사 현장 통행로 일대 건물 14곳 중 6곳이 무단증축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목격자들에 따르면 참사 당일 일부 주점은 거리에 테이블을 내놓거나 입장 인원을 관리하겠다며 경계선을 세워 통행을 방해했다. 참사 직후 경찰과 소방의 대피 안내가 잘 들리지 않았을 정도로 큰 음악소리도 피해를 키운 원인으로 꼽힌다.

서울 용산구는 올 4월 클럽 문화를 활성화하겠다며 안전과 소음 등의 규제를 준수할 경우 일반음식점에서도 클럽처럼 춤을 출 수 있도록 허용하는 조례를 만들었다. 하지만 참사 현장 인근 8곳의 ‘클럽형 주점’ 가운데 구청 허가를 받은 곳은 1곳에 불과했다.

한 업주는 기자에게 “허가를 안 받고 클럽형 주점을 영업하는 게 도대체 뭐가 문제냐”고 항변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좁은 골목에 무허가 클럽형 주점이 난립하면 인파가 몰리고 소음이 심한 상황에서 언제든 사고가 다시 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럼에도 용산구는 “단속이 어렵다”는 말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이태원의 모든 상인이 불법으로 영업하는 건 아니다. 상당수 상인은 참사 당시 시민 구조에 적극 나서 많은 생명을 구했다. 하지만 일부 상인이 안전을 경시하고, 지방자치단체가 책임을 회피하는 일이 반복되면 사고가 재발할 수 있다. 상인과 시민, 정부와 지자체 모두 ‘안전불감증’의 폐해를 다시 한 번 새겨야 할 시점이다.


이기욱·사회부 기자 71wook@donga.com
#이태원 참사#불법증축#지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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