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격과 사람들 비명소리만…” 우크라이나 10세 피난민 눈물 글썽

  • 뉴스1
  • 입력 2022년 4월 5일 12시 36분


코멘트
광주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종합지원센터에서 우크라이나 출신 고려인 동포 남아니타양(10)과 할머니 남루이자씨(56)가 서로를 마주보며 웃고 있다. 남아니타양은 전쟁이 나자 우크라이나를 탈출, 헝가리를 거쳐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지난달 22일 광주 고려인마을에 왔다./뉴스1
광주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종합지원센터에서 우크라이나 출신 고려인 동포 남아니타양(10)과 할머니 남루이자씨(56)가 서로를 마주보며 웃고 있다. 남아니타양은 전쟁이 나자 우크라이나를 탈출, 헝가리를 거쳐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지난달 22일 광주 고려인마을에 왔다./뉴스1
“쑥대밭이었어요. 들리는 건 사이렌 소리, 사람들의 비명뿐이고…. 눈 떠보니 마을 주민 100명이 대피소로 뛰어가는 뒷모습만 보였어요.”

지난달 22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광주 광산구 고려인마을로 피난 온 우크라이나 출신 고려인 동포 남아니타양(10)은 질끈 감았던 눈을 한동안 뜨지 못했다.

어눌한 한국어 실력 탓에 신조야 고려인마을 대표의 도움을 받아 인터뷰가 진행됐지만, 전쟁의 참상을 떠올리는 아니타양의 목소리는 분명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아니타양이 태어나 10년간 살았던 곳은 우크라이나 남부에 위치한 해안도시 헤르손이다. 아버지는 지난 2018년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우크라이나에선 어머니와 단둘이 2층 자택에서 살았다고 한다.

지난달 29일 오전 우크라이나 남부도시 헤르손에서 고려인 동포 남아니타양(10)의 자택이 러시아군의 폭격에 박살나 있다. 남아니타양은 전쟁이 나자 우크라이나를 탈출, 헝가리를 거쳐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 지난 22일 광주 고려인마을에 왔다.(남아니타양 제공)/뉴스1
지난달 29일 오전 우크라이나 남부도시 헤르손에서 고려인 동포 남아니타양(10)의 자택이 러시아군의 폭격에 박살나 있다. 남아니타양은 전쟁이 나자 우크라이나를 탈출, 헝가리를 거쳐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 지난 22일 광주 고려인마을에 왔다.(남아니타양 제공)/뉴스1

그러던 중 지난달 24일. 공습 사이렌과 함께 우크라이나-러시아간 전쟁이 시작했다. 마을 어른들의 도망가라는 외침은 사이렌 소리에 묻혔다고도 했다.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려 연신 마른기침을 하던 아니타양은 “한국에 온 지 2주가 지났는데 아직도 귓가에 폭격 소리가 메아리친다”며 “밤에 자면 악몽만 꾸니 요즘에는 낮잠을 자고 있다”고 말했다.

마을 주민 100명과 함께 대피소 신세를 졌던 아니타양은 이틀 밤을 지새운 뒤 밖으로 나왔다. 보금자리였던 집에는 침공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휴대전화 화면 속 사진을 가르키며 아니타양이 보여주는 헤르손의 모습은 참혹했다. 집은 산산이 부서져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고, 담벼락은 폭격에 허물어지듯 무너져 있었다. 앙상한 석재 구조물만이 2층 지붕 위에 위태로이 버티고 있어 그날의 아픔을 대변하는 듯했다.

달콤한 게 먹고 싶다며 막대사탕을 입에 문 아니타양은 “침공을 피하고자 루마니아를 거쳐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갔다”며 “고려인마을에서 항공권을 긴급 지원받아 입국했다”고 말했다.

한국에 있는 아빠, 할머니와 4년 만에 재회한 것은 기쁘지만 우크라이나에서 스페인으로 피신 간 엄마가 걱정된다고 울먹이며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엄마가 해준 물만두가 제일 먹고 싶어요. 우크라이나 친구들은 어디로 갔는지 잘 지내고 있는지 걱정되요.”

광주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종합지원센터에서 우크라이나 출신 고려인 동포 남아니타양(10)이 인터뷰를 하며 사탕을 먹고 있다./뉴스1
광주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종합지원센터에서 우크라이나 출신 고려인 동포 남아니타양(10)이 인터뷰를 하며 사탕을 먹고 있다./뉴스1

아니타양은 코로나19 방역수칙에 따라 입국한 뒤 1주일 동안 고려인마을 자택에서 격리했다. 피난 올 때 챙겼던 여권과 신조야 고려인마을 대표 덕분에 한국에 무사 입국했다.

3월에 새학기가 시작하는 한국과는 다르게 우크라이나에서는 9월에 학기가 시작, 아직 초등학교 4학년생이라는 아니타양은 타국 생활에 대한 외로움과 기대감을 동시에 드러냈다.

그는 “한국에서 할머니, 아빠와 지내고 있지만 친구들과 같이 놀고 싶다”며 “우크라이나에서는 라면이 비싸 자주 못먹었지만 한국에서는 라면만 먹고 있다. 친구가 생기면 라면을 같이 먹고 싶다”고 미소지었다.

이어 “소망하는 바는 첫째로 전쟁이 빨리 끝나는 것”이라면서 “한국으로 귀화해 좋아하는 케이팝을 듣고 싶다”고 덧붙였다.

(광주=뉴스1)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