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키트 양성’ 노인, 치료 못받고 숨져…영유아 사망도 잇따라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2월 24일 21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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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오전 경기 수원시 영통구보건소 선별진료소에 PCR 검사를 받으려는 시민들이 줄 서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24일 오전 경기 수원시 영통구보건소 선별진료소에 PCR 검사를 받으려는 시민들이 줄 서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서울에 사는 A 씨(74·여)는 23일 오전 갑자기 39도의 고열이 났다. 함께 사는 가족 중 2명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걸려 재택치료 중인 터라 자가검사키트로 검사를 해보니 A 씨도 양성이었다. 하지만 A 씨를 받아준다는 병원이 없었다. “유전자증폭(PCR) 검사 결과가 있어야 입원시킬 수 있다”는 이유였지만, 꼬박 하루가 걸리는 PCR 검사 결과를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A 씨는 병원에 가보지도 못한 채 이날 오후 사망했다. A 씨 가족의 비대면 진료를 담당한 의사는 “응급 환자만이라도 신속항원검사 결과를 ‘확진’으로 인정해줬더라면 살릴 수도 있었던 환자”라며 안타까워했다.
● 영·유아 재택 환자도 사망 속출
오미크론 변이의 치명률이 0.13%로 낮다지만 확진자가 워낙 많다 보니 사망자가 급증하고 있다. 24일 기준으로 최근 일주일 간 하루 평균 64.4명이 코로나19로 사망했다. 델타 위기(2021년 11월 17일~2022년 1월 19일) 동안 하루 평균 사망자 수인 47.1명을 이미 뛰어넘었다.

특히 백신 접종 대상이 아닌 영·유아 확진자 중에서 사망자가 속속 나오고 있다. 경북 예천군에선 재택치료 중이던 5세 B 양이 20일 복통과 흉통 증세를 보여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22일 숨졌다. 사인은 급성 심근염으로 알려졌다. 경기 수원시에선 생후 4개월 된 영아 C 군이 재택치료 중 숨졌다. C 군의 부모는 22일 오후 “아이가 숨을 쉬지 않는다”며 119에 신고했다. C 군은 신고 후 약 50분 만에 병원에 도착했지만 회복하지 못했다.
● “델타와는 다른 형태의 위기”
방역당국은 델타 위기를 거치며 코로나19 중환자 전담 병상을 2배 이상으로 늘렸다. 정부는 “중환자 2000명까지는 대응이 가능하다”며 병상이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의료진들은 델타 유행과는 다른 형태의 위기가 현실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진단이 현장과 동떨어져 있다고 지적한다. 오미크론 특성상 코로나19 중환자가 늘어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의료진들은 코로나19 자체의 증상은 가볍지만 다른 기저질환이나 급성질환이 위중해서 코로나19 환자용 중환자 병상에 입원하는 이들이 급증하는 것도 문제라고 보고 있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코로나는 가벼운데 심근경색, 뇌졸중 등 다른 질환 때문에 코로나 중환자 병상에 입원하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실제 24일 기준 코로나19 위중증 환자는 581명이지만 중환자 전담 병상에 입원 중인 환자는 1051명(23일 오후 5시 기준)으로 2배에 가깝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23일 중환자 병상 가동률은 39.1%, 준중환자 병상은 60.4%다. 이 수치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환자가 폭증하며 방역당국 전산망에 환자가 등록되는 시점이 점점 늦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상급종합병원은 이미 ‘풀 베드’에 가까워진 상황도 나온다. 김대중 아주대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교수는 “우리 병원은 준중환자 병상 20여 개가 가득 찬 상황”이라고 말했다.
● 복지부 장관 “의료체계 감당 가능”
현장은 급박하게 돌아가는데 정부는 연일 한가한 메시지를 내놓고 있다.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은 24일 기자 간담회에서 “3월 중순 (유행이) 최정점을 찍은 이후 감소 추세로 가면 의료 대응 체계가 감당할 수 있다”라며 “(그때부터) 오미크론 변이의 특성에 맞는 일상 회복으로 가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상주하는 ‘코로나 전담 응급센터’를 현행 4곳에서 이달 말 10곳으로 늘리겠다고 이날 밝혔다. 또 소아 전문 응급의료센터를 거점별로 확대하고, 119구급대와 병원, 방역당국 간 ‘핫라인’을 구축해 응급 코로나19 환자가 응급실을 찾지 못하는 사태를 막겠다고 밝혔다.

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대구=명민준 기자 mmj86@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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